[기자의 눈/홍석민]“‘마음 떠난 공무원’은 바로 내 얘기”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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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말 한 정부 부처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는 친구가 전화를 해 왔다. 본보가 각 부처 40여 명의 심층 인터뷰를 거쳐 보도한 ‘공무원들 마음이 떠난다’ 기획기사에 나오는 사례가 혹시 자신의 얘기가 아니냐는 것이었다. ▶본보 18일자 A1·2·3면 참조

몇 개월 전 점심 식사를 하며 나눴던 대화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당시 친구는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 때 이 정권을 찍었지만 지금은 많이 흔들리고 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다른 공무원들도 비슷했다. “맞는 소리다” “내 얘기 듣고 쓴 게 아니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일반 독자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동아일보는 물론 동아닷컴과 각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해 많은 국민이 이 기사를 읽었다. 수백 건씩 붙은 댓글에는 고시를 패스한 엘리트 공무원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복합적인 감정이 드러났다.

‘설익은 정책 실험’을 뒷받침하다 좌절하고 있는 공직사회를 안쓰럽게 보는가 하면, ‘무사안일, 복지부동, 철밥통…’ 같은 단어로 공무원들을 비판하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현 정권에서 공무원들은 ‘개혁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그동안 쌓은 경험과 철학은 가슴속에 감추고 ‘철 지난 이념 과잉’에 빠진 권력의 입맛에 맞는 정책을 강요당했다. 그러면서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다.

공무원 사회의 요즘 분위기를 정권 말이면 되풀이되는 레임덕만으로 설명하기엔 조금 부족해 보인다. 그동안 꾹꾹 참았던 것이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공무원들의 의식과 행태에도 바뀌어야 할 부분이 많다. 부동산 투기와 축재(蓄財)로 욕을 먹는 일부 공직자도 있다.

하지만 마치 전체가 그런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맞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과장급 공무원은 신혼시절 몇 년 동안 주말을 포함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은 게 고작 5번도 안 될 정도로 일밖에 모르고 살았지만 아직 전세살이다. 그런 그의 가슴에서 자부심과 자신감조차 앗아 간다면 득보다 실이 크다.

정부과천청사와 중앙청사는 오늘도 밤늦도록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어깨가 처진 공무원들에게 질타 못지않게 사회적 격려도 필요한 시점이다.

홍석민 경제부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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