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성희]사라진 ‘킬리만자로의 눈’

  • 입력 2006년 8월 23일 20시 11분


국내에서도 곧 개봉될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은 미국 대통령이 ‘될 뻔했던’ 앨 고어 상원의원이 제작하고 내레이터로 출연까지 한, 지구 온난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가 보여 주는 온난화의 참상은 할리우드 특수효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깎아지른 듯한 거대한 빙하가 맥없이 무너져 내린다. ‘킬리만자로의 눈’은 이제 헤밍웨이 소설의 제목으로만 남아 있다. 아프리카의 이 거대한 산은 흉한 뿌리를 드러낸 채 꼭대기에 하얀 눈을 조금 이고 있을 뿐이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지나간 대홍수의 현장에선 시신이 둥둥 떠다닌다.

온실효과로 북극해가 녹아내려 북극곰이 ‘익사’하고, 남극의 규모가 절반으로 줄면서 해수면이 상승해 인도, 방글라데시는 물론이고 중국 상하이(上海)와 미국 뉴욕의 맨해튼도 수중도시가 되리라는 것이 과학자들의 예측이다. 이것은 머지않은 장래에 벌어질 상황이라고 치자. 당장 올여름 지구를 이글이글 태운 폭염은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지구 사상 가장 더웠던 10년은 지난 14년 사이에 몰려 있고 그중에서도 최고는 2005년이었다. 올해는 다시 기록을 깨지 않을까 싶다.

한반도도 예외는 아니다. 연간 열대야 일수는 1910년대에 5일 미만이었지만 2000년대엔 25일 안팎으로 늘었다. 기상청은 이런 폭염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면서 2008년부터 열파(熱波·heat wave) 특보를 발령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7월 장맛비는 어땠는가. 이번 장마 강우량은 717mm로 평년(346mm)의 2배가 넘고 1973년 이래 장마 기간 최대 강우량이었다고 한다. 정상적인 기후 패턴이 아니다.

한때 석유 메이저들은 지구 온난화를 부정하기도 했지만 이제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못한다. 그것이 가져올 재앙의 형태와 범위만이 분석기법에 따라 차이가 날 뿐이다. 영화는 석유회사들이 몰려 있는 텍사스 주 출신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교토의정서를 비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세계에서 에너지 소비량이 가장 높은 미국인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문제의 해결은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고 고어 상원의원은 주장한다. 그러나 이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 먹고사는 일이 급하다는 것이 첫째 이유이고, 문제는 알지만 실천이 어렵다는 것이 둘째 이유다. 지구 온난화를 막는 유일한 해법은 석유나 석탄 등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뿐이다. 그러나 이산화탄소 배출 축소는 편의(便宜)의 희생과 고통을 요구한다. 냉난방과 자동차 운행은 석유를 태워 얻는 대표적 편익(便益)이다.

우리도 지구 온난화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은 온난화 원인 물질인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세계 9위이다. 2008년 시작되는 첫 감축 대상국은 아니지만 2013년부터는 감축 대상국에 포함될 것이 분명하다. 이산화탄소 배출권이 없으면 당장 산업과 경제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 시대가 닥치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 대응이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가 된 이상 책임을 부시 대통령에게만 돌릴 수는 없다. 온난화 문제에 있어 우리 모두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이다. 이 더위는 우리의 책임이다. 당장 행동해야 할 이유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성희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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