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세금 내기 아까운 ‘약탈 정부’

  • 입력 2006년 7월 27일 22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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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6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대통령비서실 출신 여당 후보들이 4개 선거구에서 전원 낙선했다. 청와대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지만 낙선자들에게도 낙심할 것 없다고 전하고 싶다. 조만간 ‘낙하산 자리’가 마련될 테니 말이다.

유권자가 외면했던 사람에게 내가 낸 세금의 일부가 또 월급으로 나갈 판이다. 경기 부천소사에서 떨어진 김만수 전 청와대 대변인은 춘추관장을 하다 2004년 총선 때 같은 지역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금방 청와대로 금의환향했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줄기찬 ‘코드 인사’에 대해 정부 혁신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을 임명하는 것이라고 ‘당당하게’ 밝혔다. 혁신의 핵심은 시스템과 매뉴얼 구축이며, 이를 통해 일만 잘하면 철밥통이면 어떻고 금밥통이면 어떠냐고도 했다.

그래서 노 정부가 일을 잘하고 있느냐고 묻자니 솔직히 피곤하다. 경제는 잘하는데 민생이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데야 물을 필요도 없다. 다만 무엇을 위한 정부 혁신인지는 물어야겠다.

‘좋은 거버넌스(governance·통치)란 부패를 방지하고 사유재산권과 계약을 강화하는 공공제도와 정책을 통해 장기적 경제성장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라고 세계은행은 규정했다. 1월 이 은행이 낸 정책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노 대통령이 당연하다고 믿는 코드 인사는 부패의 한 형태다. 공직자에게 주는 뇌물 정도는 작은 부패이고, 막대한 공공자원을 낭비하는 엉뚱한 정책은 ‘그랜드 부패’다.

능력과 상관없이 공직을 차고앉은 코드맨들이 시대착오적 코드 정책만 쏟아내지 않았어도 내 살림살이와 우리 경제는 훨씬 뻗어 갔을 것이 분명하다. 2008년까지 59조 원의 세금을 퍼붓게 돼 있는, 정부 스스로 낭비라고 인정한 균형발전사업이 한 예다. 그래서 세계은행은 “부패와 나쁜 거버넌스가 불평등과 빈곤을 키우고 경제성장과 교육의 질까지 떨어뜨린다”고 했다.

그나마 부패는 내가 돈을 뜯기지 않는 이상 직접 피해를 본다는 느낌이 덜하다. 사유재산권 침해는 삶의 의욕까지 떨어뜨리는 치명적 ‘체제 부정’이다. 먹을 것 못 먹으며 장만한 강북 소형 아파트 값이 코드 정책 탓에 뚝뚝 떨어지면 눈이 뒤집힌다. 집값은 제자리인데 재산세 부과 기준을 바꿨다며 세금만 더 내라니, 앉은 자리에서 도둑맞는 기분이다.

남의 재산 훔쳐 가는 도둑만 도둑이랄 수 없다. 지배세력이 자기 이익을 위해 법, 세금, 제도, 코드 인사, 비효율적 경제정책 등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 재산을 축내는 것이 도둑 정치(kleptocracy)다. 과거 김병준 교육부총리가 “부동산 세수로 득보는 사람들이 이 제도를 지킬 것”이라고 했듯이, 끊임없이 편을 갈라 으르고 달래는 통치술(divide-and-rule)은 도둑 정치의 전형적 수법으로 꼽힌다.

하지만 도둑 정치로 저소득층이 득볼 것이라고 믿는다면 착각이다. 사유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으면 투자도, 고용도, 성장도 이뤄지지 않는다는 세계은행 보고서가 3년 전에 나와 있다. 언제 내 재산 약탈당할지 모르는데 이 나라에 투자하고 싶을 리 없다. 제 손으로 국민의 일자리를 뺏은 정부가 또 혈세 처들여 ‘사회적 일자리’를 만든다니 소가 웃을 일이다.

그래도 노 정권은 절대 오류를 인정하지 않을 거다. 혁신정부의 코드 인사, 코드 정책이 언젠가는 경제성장을 가져온다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다. 그럴 줄 알았는지 경제학자 맹커 올슨은 “사유재산권과 계약을 보장하고, 약탈을 자제하는 정부만이 번영을 가져온다”고 못 박았다. 더 망하지 않으면 천운(天運)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해 말 어떤 청와대 코드맨은 혈세라는 말을 쓰지 말라며 “세계화 시대에 혈세를 부과하면 사람도 돈도 기술도 다 외국으로 떠난다”고 했다. 인재와 국부 유출은 이미 시작됐다. 이 땅을 떠날 수 없어 혈세 바쳐 코드맨들 먹여 살리는 국민이 불쌍하다.

김순덕논설위원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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