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권희]혁신도시, 강제 이주라도 시킬 건가

  • 입력 2006년 7월 16일 21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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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김천시 인구는 2004년 기준 14만4587명이다. 1991년 15만6047명, 2000년 15만684명에서 계속 줄었다. 2003년엔 다른 도시에서 이사 온 전입자가 많았지만 대체로 다른 곳으로 이사 간 전출자가 많다. 2004년까지 5년간 전입자보다 전출자가 매년 평균 1712명 더 많았다.

이런 김천이 작년과 올해 바쁘게 움직인 것은 혁신도시 계획 때문이다. 김천시는 농소면과 남면 일대에 인구 2만5000명을 수용할 170만 평 규모의 혁신도시를 추진해 왔다. 정부가 균형 개발을 명분으로 175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결정했고 이어 한국도로공사, 대한법률구조공단 등 13개 기관을 김천에 배정한 덕분이다.

그런데 김천으로 이전할 공공기관 직원은 모두 합해 봤자 3648명에 불과하다. 가족을 감안해도 1만 명 선이다. 게다가 이전 기관들은 서울사무소를 따로 운영할 계획이다. 직원들도 자녀 교육 등의 문제 때문에 가족을 모두 데리고 이사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많다. 기관 이전에 맞춰 주변에 식당 등 상가가 형성되고 학교를 유치한다고 해도 ‘주민 모집’이 힘겨울 수밖에 없다.

건설교통부도 이를 감안해 김천의 혁신도시 규모를 신청분의 62%인 105만 평으로 줄여 버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마저도 크다고 지적한다. 김천에만 건설한다면 모르겠지만 전국에 혁신도시를 10개나 짓는다는데 주민을 어디서 끌어 모을까.

김천 혁신도시가 지어지면 우선 가까운 김천 주민부터 유혹해야 할 것이다. 유혹이 성공하면 김천 구(舊)도시는 죽어 갈 수도 있다. 강원 속초시는 접근도로가 바뀌면서 일부 상권이 개편될 정도다. 인근에 정부가 성공시키려고 하는 혁신도시가 생긴다면 김천 구도시의 경제 충격은 상상 이상일 것이다. 대도시 권역을 제외하면 나머지 혁신도시도 사정이 비슷하다.

정부가 공공기관을 혁신도시의 원동력으로 생각한 것이 문제의 시작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직원을 지방으로 보내면 관련 일자리도 생겨나 다른 주민이 먹고살 터전도 마련되고 공공기관이 내는 지방세 덕분에 지방 재정도 좋아질 것이라고 봤다.

전문가들의 말은 다르다. 지난달 혁신도시 국제 세미나에선 여러 외국 전문가가 ‘자연스러운 기업 유치가 성패의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조그만 단지라면 몰라도 도시쯤 된다면 산학연(産學硏)은 물론이고 예술과 환경 등 고려할 게 아주 많다고도 했다. ‘정부 혼자 할 수 없는 일’이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공공기관을 지방에 배정하고 혁신도시 입지를 정하는 데 당초 계획보다 1년가량 지연됐지만 정부는 착공을 2007년으로 고집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전에 착공하려는 욕심 탓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텅 빈 혁신도시’가 걱정이 아니라 현실이 될 날이 당겨지게 됐다.

개발 규모가 축소됐어도 개발계획 구체화, 토지 수용 보상 과정에서 날짜 맞추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2012년 정부기관 이전 완료 시간표도 비현실적이다.

미래를 위한 혁신도시라면 차제에 개발 전략을 종합적으로 재점검하는 게 낫다. 꼭 추진하려거든 조건이 좋은 한 곳을 시범 개발해 성공 사례를 만들고 이 모델을 계속 보완 발전시키는 방식으로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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