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자기 아이들이라면 그렇게 할까”

  • 입력 2006년 6월 24일 03시 12분


‘열아홉 리틀맘과 다섯 살 아들이 벌이는 최악의 육아전!’

영화의 홍보 문구가 아니다. 프로그램 제목대로 ‘실제 상황’이다.

SBS가 매주 토요일 방송하는 ‘실제상황 토요일’의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코너는 버릇이 나쁜 아이들을 4, 5주간 밀착 취재하며 문제 행동을 보여 준 뒤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고쳐 주는 프로그램이다.

요즘 문제의 어린이로 출연 중인 아이가 19세 동갑내기 부모와 갓 돌 지난 여동생을 둔 다섯 살배기 김모 군이다. 미성년 부모의 육아전쟁이라는 소재도 마뜩지 않지만 실제 방송 내용은 더욱 상식을 초월했다.

키 110cm에 몸무게 26kg인 김 군에게 제작진이 붙여준 별명은 ‘막무가내 보이’. 카메라는 김 군의 문제 행동을 집요하게 쫓았다. 김 군은 수시로 엄마의 뺨을 주먹으로 때리고 상욕을 해댔다. 여동생을 때리면 제작진은 한 술 더 떠 “퍽”하고 자막 처리까지 했다.

제작진이 자극적인 화면에 집착하는 동안 마음 졸이는 위험한 상황이 이어졌다. 엄마가 자리를 비운 사이 김 군은 커다란 우산을 들고서 울며 기어 도망가는 동생을 찌르고 위협했다. 제작진은 공포영화에나 나올 법한 음산한 효과음까지 깔았다.

폐렴으로 입원한 여동생이 주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링거를 꽂은 채 유모차에서 나오려고 버둥거리는 장면은 시청자들의 불안감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아찔한 장면이었지만 배경 음악은 경쾌했고 내레이터는 “어! 둘째가 혼자네요”라고 중계하기 바빴다. 결국 링거 바늘은 뽑혔고 의료진은 숨넘어갈 듯 우는 아이의 작은 손에 다시 바늘을 꽂았다.

아이를 키우는 시청자들은 “촬영한 사람들 인간 맞느냐” “이건 야생동물 촬영하는 것도 아니고,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이전에도 아이들의 극단적인 행동을 반복해 보여 줘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자극적인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 아이들 안전에 무신경하다는 지적도 계속 제기됐다.

인권 보호와 생명 존중, 품위 유지를 요구하는 추상적 심의규정이 마음에 와 닿지 않는다면 다음과 같은 시청자의 항의를 새겨 보았으면 한다.

“당신 아이들이라도 그렇게 하겠습니까.”

이진영 문화부 eco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