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기자의 히트&런]이승엽-밸런타인의 ‘윈윈’

  • 입력 2006년 5월 30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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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4번 타자 이승엽(30)과 작년 일본시리즈 챔피언 롯데의 보비 밸런타인(56) 감독.

2004년부터 2년간 롯데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둘은 애증의 관계다. 애(愛)보다는 증(憎) 쪽이 강하다.

밸런타인 감독은 2004년 이승엽을 2군으로 보내기도 했고, 작년에는 상대 투수에 따라서 출전 기회를 안 주기도 했다. 이승엽은 그런 악조건에서도 30홈런을 쳤다. 한신과의 일본시리즈에서는 4경기 3홈런으로 우승에 기여했다.

‘국민타자’ 이승엽을 응원하는 국내 팬의 눈에 밸런타인 감독이 이상하게 비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즌 후 이승엽은 중대 결단을 내렸다. “롯데에 남겠다”던 말을 뒤집고 좀 더 적은 연봉에 요미우리로 팀을 옮긴 것이다. 돈보다는 출전 기회를 얻겠다는 일념이었다.

그런 두 사람이 26일부터 사흘간 도쿄돔에서 열린 인터리그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이승엽은 펄펄 날았다. 27일 역전 2점 홈런, 28일 동점 2점 홈런을 치며 밸런타인 감독 앞에서 무력시위를 했다. 3경기 동안 이승엽은 홈런 2개, 2루타 2개, 안타 하나로 4타점을 올렸다. 요미우리 4번 타자로 변신한 이승엽은 승자였다.

그렇다면 밸런타인 감독은 패자였을까. 아니다. 밸런타인 감독 역시 승자였다.

일본 언론에서 ‘보비 매직(보비의 마술)’이라고 부르는 절묘한 선수 기용으로 3연전을 모두 싹쓸이했다. 이승엽과의 전투에서 졌을지는 몰라도 요미우리와의 전쟁에서는 이겼다.

세 경기를 모두 내준 요미우리는 센트럴리그 2위로 추락했고, 퍼시픽리그 선두 롯데는 1위 자리를 굳게 지켰다.

다시 겨울로 돌아가 보자. 이승엽은 롯데의 잔류 조건으로 ‘수비 보장’을 요구했다. 밸런타인 감독은 팀 내 최다 홈런을 친 이승엽이 아쉬웠겠지만 미련 없이 떠나보냈다.

그가 필요로 한 것은 7번 타자 이승엽이었다. 그것도 경우에 따라 출전시키지 않을 수도 있는 선수를 원했다. 이승엽 개인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야구 색깔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밸런타인의 구상은 이승엽이 떠남에 따라 일부 조정됐지만 올해 결과는 나쁘지 않다. 롯데는 올해도 퍼시픽리그 1위 자리를 굳게 지키고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선수를 발굴하고, 선수들 간의 경쟁을 유도한 것이 적중한 것이다.

롯데를 떠난 이승엽도 요미우리에서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지만 밸런타인 감독 역시 승승장구하긴 마찬가지다.

야구에도 맞는 사람이 있고, 연때라는 게 있다. ‘성격 차이’가 있던 둘의 결별은 서로에게 ‘윈윈(Win-Win)’이 됐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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