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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4월 21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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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중반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무지와 편견, 그리고 인종차별을 깨기 위해 서로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 주던 동시대 여성들입니다. 작가이자 전사(戰士)들입니다.
지금은 모두 잊혀 가는 이름이지만 워드 선수가 그 이름들 중 하나, 펄벅에 관한 추억을 제게 남기고 갔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에게 남기고 갔습니다.
그녀를 만난 건 ‘북경에서 온 편지(Letter from Peking)’라는 영한 대역본 소설에서였습니다. 고3 때쯤이었나 봅니다. 메이플(단풍나무) 시럽이란 말이 이국적 풍미로 다가오던 소설이었습니다. 중국에 두고 온 남편의 마지막 편지 이야기로 시작하는 그 소설은 그러나…, 펄벅이 평생을 두고 천착했던 아메라시안(Amerasian)의 이야기였습니다.
미국인과 아시아인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아메라시안이라고 합니다. 1940년대 이 말을 처음 만든 사람도 펄벅입니다. 백인 여주인공의 남편인 제럴드 매클라우드가 바로 절반은 미국인이고, 절반은 중국인인 아메라시안이었습니다. 매클라우드의 중국인 어머니는 공산 혁명에 가담해 처형당합니다. 펄벅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여자는 아이의 운명도 알지 못한 채 절반이 백인인 아이를 낳았던 것이다. 이 아이가 살 땅은 어디인가? 그 여자는 아들을 위해 새 나라를 만들고 싶어 했다.”
전족(纏足)을 하고, 오직 남편에게 아들을 낳아 주고 싶다는 일념에 들떠 있던 봉건여성을 혁명으로 내달리게 하고, 처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건 바로 편견과 차별이었습니다. 30여 년 전 워드 선수의 어머니가 핏덩이를 안고 태평양을 건넌 것도 ‘혁명’을 위해서였을 겁니다. 전 세계 열여섯 나라 병사들의 유혈 희생을 딛고 전쟁을 벗어난 나라였지만 그 땅은 여전히 ‘못난 사람들의 천국’이었습니다. 더구나 아이는 ‘검둥이’였습니다.
다시 아름다운 이름들을 불러봅니다. 펄벅, 루스 베네딕트, 님 웨일스…. 펄벅과 님 웨일스는 중국을 사랑하면서도 한국에 관해 애정 어린 글들을 남겼습니다. 1963년 펄벅이 발표한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에는 기미독립선언문이 실려 있습니다. 동화책 ‘매슈, 마크, 루크, 존’은 구걸과 잡일을 하며 서울의 다리―아마도 청계천 다리―밑에서 모진 목숨을 이어 가는 혼혈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님 웨일스는 ‘아리랑’을 썼습니다. 루스 베네딕트는 일본문화 입문의 고전으로 불리는 ‘국화와 칼’을 썼습니다. 비록 전시(戰時)에 미국 국무부의 요청을 받아 쓴 것이지만, 인종적 민족적 편견을 넘어선 지성의 산물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갈대’의 맨 앞장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다.’ 옛사랑의 이 말이 왜 이렇게 비수가 되어 가슴을 후비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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