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호 칼럼]‘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걱정한다고?

  • 입력 2006년 4월 8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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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을 전공하는 한 후배가 최근 ‘한국인의 행동 유형’이란 썩 그럴듯한 분류법을 내놓았다. 한국인은 충동, 편 가르기, 이익, 정의(正義), 신(神)이라는 5가지 기준에 따라 유형화(類型化)된 행동 양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설명인즉 이렇다.

첫째,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감정에 휘둘리는 사람으로 가장 저급한 인간형이다. 둘째, 내 편인가 아닌가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다. 언제든 편을 갈라야만 속이 시원한 유형이다. 셋째, 이익이냐 손해냐를 따져서 행동하는 사람이다. 야박스럽기는 해도 편 가르기보다는 낫다. 넷째, 무엇이 옳으냐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옛 군자들의 삶이 이랬을 것이다. 끝으로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 성직자들이 이에 속한다.

인간의 행동 유형을 5가지로 나눈 사회학자는 미국 하버드대의 탤컷 파슨스(1902∼1979)였다. 구조기능주의의 대가인 그는 감정-감정 중립, 자아(自我) 지향성-집단 지향성, 보편성-특수성, 귀속성-업적, 한정성(限定性)-무(無)한정성을 기준으로 사람의 행동을 나눴다. 이 유형 분류는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

내 후배가 무슨 학술 차원에서 정색을 하고 ‘한국인의 행동 유형’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성이 있다. 무엇보다 투표행태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동안 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우리는 어떤 동기에서 한 표(票)를 던졌는가.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이라면 마땅히 ‘이익’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투표는 투표행위자의 기대이익을 실현하는 법적 수단이다. 합리적 선택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 원칙이 민주정치를 떠받치는 기둥이다. 내가 무슨 지역에 살건, 누구에게 끌리건, 투표장에 들어서면 냉철하게 ‘이익’을 좇아 투표하는 유권자라야 그에 상응하는 질 좋은 정치를 누릴 수 있다. 정치가 비로소 우리 사회를 온전하게 비추는 거울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이익’이란 아무래도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관점에서 규정되어야 할 터이다.

어느 쪽이 옳으냐에 따라 투표해야 한다고? 아니다. 선거를 사이비 근본주의자들의 결투장으로 만들 생각이 아니라면 피해야 한다. 누가 ‘정의(正義)’이고 누가 ‘불의(不義)’인지, 칼로 무 자르듯 가를 수도 없거니와 선거판의 ‘정의’라는 것이 대개는 ‘포장된 권력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 정권이 반면교사(反面敎師)다.

‘내 편이냐 아니냐’에 따른 투표행태의 폐해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선거 때마다 겪어야 했던 망국적 지역감정을 떠올려 보라. 반드시 도려내야 할 우리 정치의 암(癌)이다. 그러나 ‘편 가르기’보다 무서운 것이 ‘충동’이다. 충동에 따라 투표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파슨스의 유형에 따르면 감정에 휘둘리는 전근대적인 사람이다.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없다. 숙의(熟議)민주주의의 적(敵)이다.

흔히 우리도 이제는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걱정할 때가 됐다고 한다.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그릇은 만들어졌으므로 그 안에 뭘 담을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의 정치문화와 행태는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듯해서다. 그것도 가장 안 좋은 ‘충동’ 쪽으로.

집권 여당이 장기(長技)로 치는 ‘이미지 정치’ ‘이벤트 정치’ ‘감성 정치’가 다 ‘충동질하는 정치’ 아닌가.

여기에 휩쓸리는 유권자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독재와 반(反)독재 사이에서 고민이라도 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아니다. 색(色)에 쏠리고 패션에 쏠린다. 정치도 화장품이나 스카프를 팔 듯 해야 하는 시대라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영국의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은 명저 ‘권력(Power)’에서 참된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유치원 때부터 아이들이 이런 유의 충동질에 넘어가지 않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포장은 화려하지만 ‘질은 형편없는 사탕’과 내용물에 대한 정보가 정확히 표시됐지만 포장은 별로인 ‘질 좋은 사탕’을 놓고 고르는 훈련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러셀이 ‘권력’을 썼을 때가 1938년인데 지금 우리에게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면 앞으로 민주주의 훈련을 얼마나 더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이재호 수석논설위원 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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