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민 칼럼]이해찬과 원자바오

  • 입력 2006년 3월 7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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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11년 된 낡은 잠바를 입고 행사장에 나타나 그 나라 인민을 감동시켰을 때 한국의 이해찬 국무총리는 적절치 못한 시간에 적절치 못한 사람들과 골프장에 나타나 이 나라 국민을 실망시켰다. 두 나라 총리의 대조적인 모습은 더 있다. 원 총리가 늘 온화한 인상에 미소를 머금고 인민들을 격려하고 다닐 때 이 총리는 버릇처럼 성난 표정으로 언론에 등장해 왔다.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나 얼굴에 나타난 표정은 인간 내면의 심리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다른 이에게 비친 인상은 본인의 책임이다. 이 총리는 그를 바라보는 국민에게 무슨 불만이 그렇게 많았을까. 그가 총리 인준을 위한 국회 청문회 때만큼 온화한 모습을 재임 중에도 보여줬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총리는 최소한 인품을 갖춘 것처럼 보이도록 인내했어야 했다.

그가 해외 순방 중 술에 취해 “동아 조선이 내 손아귀에 있는데 까분다”느니, “어느 신문은 중심을 잡아 가고 있다”는 등 총리의 말이라고 믿기 어려운 소리를 한 것도 취중에 그의 심리상태가 표출된 해프닝 중 하나였다. 임전태세의 비장한 표정으로 국회의사당에 등장해 답변 대신 국민의 대표들과 거친 설전이나 벌이고, 지방의 국립대 총장을 거침없이 면박한 것도 마음의 넓이를 읽게 해 주는 사례들이다.

국가를 한 가정에 비유한다면 총리는 집사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집의 집사가 검약의 모범을 보이며 부드러우면서 꼼꼼하게 살림을 챙기면 그 집안 관리는 걱정할 게 없다. 반면 집사가 늘 험한 인상으로 사람들과 다투기나 하다가 집안에 흉사가 생길 때마다 골프나 치러 다니는데, 그것도 행실이 좋지 않은 인사들과 어울렸다면 그 집안 관리는 잘될 리 없다. 그러니 요즘 중국이 경제적으로 잘나가고 한국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다. 쇼트트랙 계주에서 선두 주자들 덕에 중국 팀을 한참 앞섰던 한국 팀이 참여정부 주자 차례에서 크게 뒤처지는 것 같은 상황에 이번 사건이 벌어졌으니 국민의 불만은 클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그깟 잠바 한 벌 값이 얼마나 하겠는가. 중국 총리의 월급 규모로 볼 때 사소한 것일 수 있고, 또 낡은 옷 입는 것이 국가 경제에 반드시 유익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치란 그런 것이다. 그토록 작은 일에도 쉽게 감격할 수 있는 것이 국민이다. 지도자가 모범을 보여 국민이 감동할 때 국가가 얻는 심리적 효과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오래전 우리나라에서도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손수 대통령의 양말을 기워 신도록 해 국민을 감동시킨 적이 있다. 그때는 워낙 가난했으니까 그랬으려니 생각한다면 당시의 남한보다 형편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는 지금 북한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라. 지도자의 마음 자세가 곧 그 나라 운명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알 수 있다.

“등산을 했더라도 문제가 됐겠느냐”는 김진표 부총리의 국회 항변도 옳지 않다. 아마도 그 자신이 2003년 태풍 매미로 난리가 났을 때 제주도에서 한가로이 골프를 치다가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데 대한 울분이 남아 있어 그랬는지 모르지만 적절한 말은 아니었다. 철도가 마비돼 국민이 고통을 받고 있다면 총리는 등산조차 하지 말고 차라리 골프복 차림으로라도 서울역에 나가 국민의 고통을 공유했어야 옳다. 흡사 새 잠바 한 벌이 몇 푼이나 하느냐고 따지는 것처럼 정치라는 것을 깊이 숙고하지 않고 내뱉은 신중하지 못한 답변이다.

일국의 총리는 어떤 인물이어야 할까. 세계 역사를 보면 깡패 같은 군인도 쿠데타를 통해 대통령에 오른 적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 유권자들의 한순간 판단 착오로 대통령이 된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총리는 임명직이다. 만일 대통령이 스스로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더더욱 덕과 능력을 갖춘 사람을 기용했어야 했다. 결단력이 있고 내각 장악 능력이 뛰어나며 대통령과 코드가 잘 맞는다는 등의 실용적 이유만으로 총리를 시킨다면 그런 나라의 국민은 마치 운전은 잘하지만 성질 거친 운전사의 택시를 탄 승객처럼 마음이 편할 리 없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원하는 것은 바로 원자바오 같은 총리이다.

이규민 경제 大記者 kyu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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