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석준]남몰래 봉사하는 사람들 그들이 ‘노블레스’

  • 입력 2006년 2월 17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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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께서 많이 외로우신 것 같다.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있는데 그만하고 옆에 와서 이야기만 하자고 하신다. 그래서 오늘은 2시간 동안 할머니의 말벗이 되어 드렸다.”

80세가 넘은 혼자 사는 할머니를 일주일에 한두 번씩 찾아가 봉사하고 있는 적십자 자원봉사자의 봉사일지 중 한 구절이다. 또 다른 봉사자의 일지에 기록된 내용이다.

“떡볶이와 귤 몇 개를 합쳐 2500원어치를 사가지고 갔는데 맛있게 드셨다. 감기 기운이 있어 동네 병원에 모시고 갔다 왔다. 한결 기분이 좋아졌다고 하신다.”

요즈음 많이 회자되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는 사례가 아닐까 하여 소개하였다.

‘고귀한 신분의 소유자는 봉사와 헌신의 책임을 다하여야 한다’쯤으로 풀이되는 이 프랑스 말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첫째 ‘노블레스’이므로 ‘오블리주’해야 한다는 의미로 새긴다면 반대로 ‘나는 노블레스가 아니므로 그런 책임이 없다’고 하거나 또는 ‘노블레스 하지도 않는데 그렇지 못한 내가 왜 하나’ 하는 해석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선 오블리주 후 노블레스’가 고대 로마시대부터 이미 확립된 원칙이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즉,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만이 당대 또는 후세에 노블레스로 인정된 것이다. 수많은 귀족과 고관대작이 있었지만 모두가 노블레스로 대접받은 것은 아니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가진 것이 많다고 하여,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다고 하여 노블레스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앞서 인용한 봉사원들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여유 있는 분들이 아니다. 그렇다고 수당이나 거마비를 주지도 않지만 아예 바라지도 않는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한나절씩 꼬박꼬박 결연을 한 어려운 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되고 목욕도 시켜 드리고, 병원 슈퍼마켓 등 바깥출입도 돕고 밀린 빨래도 하고 반찬도 만들어 드린다.

그들은 오블리주를 실천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진정한 노블레스가 된 것이다. 이 말이 미심쩍게 들리면 그들을 한번 만나 보길 권하고 싶다. 그분들의 얼굴에서 성자(聖者)의 기품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데 물질, 즉 돈이 중심이 된다는 생각도 바람직하지 않다. 돈만으로 하는 오블리주는 순수성과 진정성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때로는 정성과 수고가 돈보다 더 값질 때가 많다.

어려운 분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배달하는 일을 보자. 쌀값, 반찬값보다도 음식을 만들고 각 가정까지 배달하는 일이 더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든다. 또 정성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자신의 가족에게 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고 봉사해야 맛과 위생을 보장할 수 있다.

얼마 전 적십자사에서는 밸런타인데이에 노인들에게 오곡밥 점심을 대접하는 일을 하였는데, 그때 인터넷에 자원봉사자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많은 젊은 커플들이 참여하였다. 그들은 하루 봉사를 마친 후 최고의 밸런타인데이를 보냈다며 아주 만족해했다.

이처럼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한 오블리주는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 누구나 노블레스가 될 수 있다.

장석준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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