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연수]보건복지부를 어쩌나

  • 입력 2006년 1월 6일 03시 03분


사례1: 한 중견기업 사장은 후두암 진단을 받고 미국 존스홉킨스 병원을 찾아갔다. 하지만 “미국 병원들은 후두암 수술 경험이 별로 없고 한국 병원이 우수하니 그리로 가라”는 조언을 듣고 한국으로 돌아와 수술을 받았다.

사례2: SK는 예치과 새빛안과 탑성형외과 등 전문 병원들과 제휴해 2004년 중국 베이징에 ‘SK아이캉병원’을 세웠다. 진료비가 일반 병원의 수십 배에 이르는 이 병원은 중국 저명인사들이 즐겨 찾는 고급 병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국내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의료산업의 현실을 보여 주는 사례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도 ‘병원 기업’을 허용한다. 태국은 일찌감치 의료서비스와 관광을 연계한 상품으로 돈을 벌고 있고, 인도도 헬스케어 중심지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싱가포르는 아시아 의료 허브를 국가 비전으로 내세우고 2010년까지 100만 명의 환자를 유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한국에서는 아직 주식회사 등 영리법인이 병원을 운영할 수 없고, 병원 광고 제한 등 정부의 규제가 많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영리 법인 허용에 대해 “의료비가 비싸지고 공공 의료체계가 무너진다”며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시아 여러 나라가 의료서비스를 차세대 성장 엔진으로 삼아 뛰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 공공성을 강조한다면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물론 국내 손님까지 뺏기게 될 것이다. 민간의 풍부한 돈과 창의성을 끌어들여야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의료분야도 마찬가지다.

경제가 발달할수록 경쟁에서 낙오된 사람들을 보살피는 복지부의 역할은 중요해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다는 아니다. 복지부는 의료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다.

고령화시대 의료산업은 정보기술(IT) 생명공학기술(BT)과 연계해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 미래 산업에서 더 많은 일자리와 부(富)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이를 외면하고 복지를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한덕수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최근 사석에서 “이제는 재경부보다 복지부가 더 중요한 경제 부처”라고 말했다. 경제개발 시대에 비해 재경부의 위상이 많이 떨어졌지만 그보다는 경제에서 복지부의 역할을 강조한 말일 것이다.

넓어지고 높아진 책임을 다하려면 복지부가 변해야 한다.

경제계는 복지부를 어떻게 보고 있나. 복지부 출신으로 기업에 간 한 인사는 “복지부는 아직도 눈이 국내와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경제 부처 공무원들은 “개방과 규제 완화라는 큰 흐름에서 비켜 있는 분야는 교육과 의료뿐”이라고 말한다.

외국 기업들은 한국 정부의 정책이 불투명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그중 상당수가 의료 제약 분야다.

한마디로 복지부에 국제 감각과 경제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 큰 병에 걸려도 집안이 망하지 않고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사회는 우리가 계속 추구해야 할 가치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는 의료산업에 날개를 달아 주는 일도 더 미룰 수 없다.

경쟁력과 사회복지, 두 가지 다 복지부가 포기해선 안 되는 목표다.

신연수 경제부 차장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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