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를 읽고/김세중]외국인 이름 한글 표기법 따라야

  • 입력 2005년 12월 12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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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치는 외교관’으로 잘 알려진 신임 주한 미국대사의 한글 이름을 어떻게 표기해야 하나를 두고 화제가 됐다. ‘알렉산더 버시바우’로 불리고 있는 대사의 성(姓)을 본인과 미국 대사관 측이 ‘브시바오’로 써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12월 2일자 A22면 참조

폴란드 이민자 집안 출신인 대사는 미국에 이민할 때 이민국 직원이 ‘버드나무’를 뜻하는 폴란드 성(Wierzbowy)을 잘못 알아듣고 ‘Vershbow’로 기록하는 바람에 발음과 다른 영문 이름을 갖게 됐다고 한다.

통념으로 생각하면 한국인이든 외국인이든 되도록이면 본인이 원하는 이름을 써 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자세일 것이다. 하지만 무조건 그렇게 하기에는 문제가 좀 있다.

외래어가 없는 언어는 없다. 우리말에도 외래어가 많이 있다. 외래어에는 보통명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외국 사람 이름, 외국 지명도 외래어다. 외국의 인명, 지명은 외국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런 고유명사를 한국어로 말할 때는 외국어 발음 그대로 발음하는 게 아니고 한국어화해서 발음하고 표기하므로 외래어다.

그런데 외래어를 한글로 적는 일이 간단치 않다. 외국어의 소리를 들어 보면 딱 들어맞는 한국어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영어의 ‘tree’는 ‘트리’인지 ‘추리’인지, nut는 ‘너트’인지 ‘나트’인지 가리기 어렵다. 고유명사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파리, 말레이시아 같은 표준 표기가 정해져 있지만 아직도 싱가폴, 빠리, 말레이지아 같은 말이 쓰이고 있다.

외국인의 이름도 ‘이름 자체’는 그 사람의 것으로 존중돼야 하지만 ‘그 이름의 한글 표기’는 ‘한국어의 규칙’을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많은 외국인들이 자기 이름의 한글 표기법을 스스로 결정할 경우 생겨날 수 있는 혼란 때문이다. 사람 이름에도 ‘외래어 표기법’을 존중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문제가 논란이 되자 주한 미대사관 측이 “한글 표기법을 거스르면서까지 ‘브시바오’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혀 온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김세중 국립국어원 국어생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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