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 국제대회] “민주 외치던 정부인사들 귀 막았나”

  • 입력 2005년 12월 10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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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전 탈북 순간 아찔해요”9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 2002년 5월 중국 선양의 일본총영사관에 진입하려다 인민무장경찰에 붙잡혔던 일을 회고하는 탈북자 김한미 양 가족(왼쪽). 오른쪽은 총영사관 진입을 제지당하던 당시의 처절한 모습. 연합뉴스
“3년전 탈북 순간 아찔해요”
9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 2002년 5월 중국 선양의 일본총영사관에 진입하려다 인민무장경찰에 붙잡혔던 일을 회고하는 탈북자 김한미 양 가족(왼쪽). 오른쪽은 총영사관 진입을 제지당하던 당시의 처절한 모습. 연합뉴스
9일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는 중국의 탈북자 북송 문제와 북한인권개선운동을 하는 시민단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부실한 지원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또 대북지원물자 배분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는 대안과 함께 북한의 정보 통제를 무너뜨릴 수 있는 방안도 제시됐다.

▽“중국의 탈북자 정책은 유엔협약 위반”=마이클 호로위츠 미 허드슨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날 대회 두 번째 행사로 열린 ‘북한인권개선전략 회의’에서 “고국에 돌아갈 경우 박해를 받게 될 사람은 어떤 일이 있어도 송환하면 안 된다”며 “탈북자를 북한으로 내모는 중국은 완벽하게 유엔협약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중국은 탈북자들의 난민 지위를 인정하고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이 탈북자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호로위츠 연구원은 중국 정부를 상대로 탈북자 북송의 문제점을 제기하지 않는 미국 정부도 강하게 비판했다.

한나라당 김문수(金文洙) 의원도 이날 회의에 참석해 “오늘도 수많은 탈북자가 중국 곳곳에서 강제북송을 당할까봐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열린우리당 정의용(鄭義溶) 의원은 “중국을 압박한다고 해서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지적이었다.

▽“정부의 시민단체 지원 4500만 원에 불과”=이번 대회 공동대회장을 맡고 있는 유세희(柳世熙)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올해 정부가 북한인권개선을 위해 활동하는 시민단체에 지원한 금액이 통틀어 4500만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국내 4000여 개 시민단체 중 20여 개에 불과한 북한인권시민단체가 심각한 재정난으로 활동에 지장을 받고 있다는 게 유 교수의 설명. 그는 “어떤 단체는 재정난 때문에 이름만 있고 실제 활동은 거의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 교수는 재정난을 겪고 있는 이유로 정부의 통일홍보정책에 북한인권문제가 가려 있는 측면과 과거에는 인권투쟁을 했던 진보적인 시민단체들이 북한에 대한 비판을 꺼리며 북한인권 시민단체와 경쟁을 벌였던 점을 들었다.

▽“쌀 말고 다른 생존수단을 지원해야”=레프코위츠 특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지원 물자들이 군부 쪽에서 이용됐거나 외화 획득을 위해 남용됐다는 얘기가 있다”며 “이런 문제에 대한 개선과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로위츠 선임연구원은 북한정권이 쌀 등 선별적 배분이 가능한 물자를 지원받을 경우 인도주의적 지원 목적과 무관한 곳에 쓰일 수 있다며 “미국과 한국은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대신 병원을 지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姜哲煥) 북한민주화운동본부 공동대표는 “북한에 연간 1억 달러어치의 쌀이 공급된다면 굶어죽는 사람이 안 생긴다. 그러나 실제 이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쌀이 공급되지만 다른 곳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여전히 굶는 사람이 있다”고 밝혔다.

▽“라디오 방송으로 정보 통제를 무너뜨려야”=열린북한방송의 하태경 사무총장은 “북한 통치의 두 기둥은 ‘공포’와 ‘정보 통제’”라며 “북한에서는 인터넷도 안 되기 때문에 라디오방송으로 자유세계의 소식을 전달해 정보 통제를 무너뜨리는 게 가장 낫다”고 주장했다. 열린북한방송은 1년 6개월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6일 대북 라디오방송을 시작했다.

이명건 기자 gun43@donga.com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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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반쪽은 공포속에 살고있다”▼

“북한에서는 아주 당연한 자유조차 누릴 수 없다.”(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

“한반도의 반쪽은 공포 속에 살고 있다.”(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특사·사진)

버시바우 대사와 레프코위츠 특사는 9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북한인권국제대회에서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버시바우 대사는 “북한은 국제 구호단체들의 접근을 제한해 투명성도 없고 필요한 협력도 하지 않는다”며 “(북한 인권 문제의) 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미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뒤이어 발표자로 나선 레프코위츠 특사는 옛 소련 시절 박해받던 유대인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의 피해자였던 유색민족을 언급하며 “당시 적극적인 문제 제기를 통해 변화를 꾀했듯이 국제적 담론인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남영동 주한 미대사관 정보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6자회담과 대북 금융제재를 연계시키는 북한에 대해 “미국 법을 집행하고자 하는 노력들을 빌미로 회담을 지연시켜선 안 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번 인권대회에 참가 중인 미국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발언은 모두 미 행정부의 내부 합의를 거쳐 매우 치밀한 계산 아래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내외신 기자들은 ‘미국은 왜 중국 등의 탈북자 지원 단체에 실질적인 지원은 하지 않는가’ ‘이라크 포로들에 대한 인권 유린 논란에 휩싸인 미국이 인권을 논할 자격이 있는가’ 같은 신랄한 질문을 했다.

이에 레프코위츠 특사는 “탈북자 문제는 앞으로 내가 다룰 우선순위 중 하나”라면서 “북한 인권에 대한 적절한 문제 제기 시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납북자 서신교환-유해송환 허용을”▼

9일 오후 4시. 이날 북한인권국제대회의 마지막 행사인 비정부기구(NGO) 회의가 열린 서울 중구 장충동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

단상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 2002년 5월 8일 탈북 일가족 5명이 중국 선양(瀋陽)의 일본총영사관에 진입을 시도하는 장면이 나왔다. 두 살배기 딸을 안은 핑크색 상의의 엄마는 총영사관 정문 진입에 반쯤 성공했지만 중국 인민무장경찰의 제지로 결국 실패하고는 울부짖었다. 엄마 품에서 튕겨져 나온 딸도 같이 울었다.

이때 갑자기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스크린 속의 주인공들이 단상으로 올라온 것. 현재 5세인 김한미 양이 엄마 이성희 씨의 손을 꼭 잡은 채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자 여기저기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일(李美一)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장은 납북자 송환촉구 호소문을 통해 “북한 당국은 납북자들의 생사를 확인해 주고 서신 교환이나 유해 송환을 허락해 달라”고 말했다.

1969년 12월 대한항공 여객기로 출국하다 강제 납북된 황원 씨의 아들인 황인철 납북자가족협의회 사무국장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며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납북자의 가족은 통일의 방해자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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