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628>卷七.烏江의 슬픈 노래

  • 입력 2005년 12월 2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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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박순철
그림 박순철
그때 한신은 임치로 돌아가 다시 제나라의 민심을 추스르는 데 힘을 쏟았다. 그러나 아무리 재물을 풀고 형벌을 느슨하게 해도 기질이 억세고 계략에 밝은 제나라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한나라로 기울어지지 않았다. 거기다가 그곳 선비들의 마음은 또 전영 전횡 형제가 굳게 사로잡아 한신이 벼슬과 봉록으로 달래도 돌아설 줄 몰랐다.

“아직 전횡이 영하에서 스스로 왕이라 일컬으며 버티고 있고, 또 허장(許章)과 전기(田旣)도 각기 적지 않은 군사와 더불어 우리에게 맞서는 중이라 그럴 것입니다. 그들만 잡으면 저들의 기세도 숙어질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한신이 은근히 다급해하자 괴철이 그렇게 위로했다. 하지만 전횡이 양(梁) 땅으로 달아나고 조참이 허장과 전기를 잡아 죽여 제나라가 온전히 평정된 뒤에도 산동의 민심은 싸늘하기만 했다. 걱정이 된 한신이 다시 누구에게랄 것도 없이 탄식처럼 말했다.

“관영은 전횡을 잡고도 본진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별장(別將)으로 떠돌며 제나라 곳곳을 평정하느라 바쁘다. 지금은 노현(魯縣) 북쪽에서 초나라 장수 공고(公(고,호))와 싸우고 있지만, 설령 이긴다 해도 그대로 제나라가 조용해질 것 같지는 않다. 거기다가 설현(薛縣)이나 사수군(泗水郡) 쪽으로는 초나라의 세력이 살아 있어 그들에게 기대려는 자들도 있을 것이다.

조참도 가까운 날 임치로 돌아와 나와 함께 제나라 민심을 안정시키기는 틀렸다. 교동까지 가서 전기를 죽이고 돌아오는 중이라지만 일이 그것으로 모두 끝난 것 같지는 않다. 저번에 평정하다 만 제북(齊北)이 다시 들고일어나 시끄럽다니 이번에도 조참을 보내는 수밖에 없다. 자칫하면 우리도 항왕처럼 끝내 빈손으로 제나라에서 쫓겨나는 것이나 아닌지….”

마침 곁에 있던 괴철이 뜻있는 웃음과 함께 그 말을 받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업신여긴 뒤에 남으로부터 업신여김을 받는다 했습니다. 아직 제나라의 민심이 돌아오지 않은 것은 틀림없으나, 대장군을 미련하고 포악한 항왕에 견주어 그렇게 상심하실 일은 아닙니다. 굵직한 세력은 다 꺾었으니 이제는 저들이 의지하고 따를 임금만 세워주시면 제나라 백성들도 그리 오래 뻗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항왕도 전영을 죽이고 전가(田假)를 왕으로 세운 적이 있소. 그러나 제나라 사람들은 기어이 전가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전횡을 도와 항왕과 초나라 군사를 내쫓았소.”

한신이 그러면서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괴철이 가만히 일깨워 주듯 말했다.

“항왕은 옛 제나라 왕실의 육친이라고 전가를 왕으로 세웠습니다만, 제나라 왕이 될 자격은 혈통이 아니라 나라를 다스릴 능력입니다. 원래 제나라는 강씨(姜氏)의 것이었고, 전기(田乞)와 전상(田常)은 임금을 죽인 역신이었으나, 결국 그 자손 전화(田和)가 제나라 임금이 된 것은 그들에게 강씨를 대신해 제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제나라 사람들이 잘 변하고 속임수가 많다는(다변사·多變詐) 말을 듣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전씨를 군소리 없이 왕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심사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능력 있는 이가 왕이 되어 제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도 오래잖아 그를 따를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소? 그게 누구요?”

한신이 아직도 잘 모르겠다는 듯 괴철에게 물었다. 괴철이 잠깐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바로 대장군이십니다. 대장군께서 제왕(齊王)이 되신다면 이 땅은 곧 잠잠해질 것입니다.”

글 이문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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