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88년 노태우, 전두환 사면호소 담화

입력 2005-11-26 03:01수정 2009-10-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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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했던가. 대통령 직에서 물러난 지 9개월 만에 백담사로 ‘유배’를 떠나야 했던 전두환(全斗煥) 전 대통령의 뇌리에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은 어떻게 각인됐을까.

“우리 둘은 인수인계만 다섯 차례나 했다. 참모총장 수석부관, 경호실 작전차장보, 보안사령관, 당 총재, 대통령. 대개 전·후임자는 사이가 나쁜데 우리는 좋았다. 노 대통령이 후보 때 내가 집에도 여러 번 놀러 갔다. 그런데 내 친구는 노태우 내외뿐인데 취임 후에는 한 번도….”

노태우 정권 초기 대통령정책담당보좌관을 지낸 박철언(朴哲彦) 전 의원은 최근 펴낸 ‘바른 역사를 위한 증언’에서 전 전 대통령이 백담사로 가기 직전에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자택에서 자신을 만났을 때 한 얘기를 이렇게 기록했다.

육사 11기 동기생이었지만 항상 전 전 대통령의 뒤를 쫓아왔던 노 대통령이 친구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계기는 여소야대(與小野大)의 정국이었다. 6공 출범 직후 치러진 1988년 총선은 여소야대로 귀결됐고, 이후 노 정권은 5공 비리 청산을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에 시달렸다.

노 정권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전 전 대통령에게 칼날을 돌리는 것뿐이었다. 이는 5공 비리, 광주민주화운동, 언론 등 ‘3대 청문회’가 본격화한 그해 11월 찾아왔다. 그러나 5공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다. 일각에서는 5, 6공의 공멸을 의미하는 ‘폭탄 선언’ 운운하기도 했다. 이에 노 정권은 힘을 앞세운 회유와 협박으로 5공 세력을 압박해 들어갔고 결국 전 전 대통령은 11월 23일 부인 이순자(李順子) 씨와 함께 백담사로 떠나야만 했다.

“저는 어떤 단죄도 달게 받아야 할 처지임을 깊게 깨우치면서 국민 여러분의 심판을 기다리겠습니다. 국민 여러분이 가라는 곳이면 조국을 떠나는 것이 아닌 한 속죄하는 마음으로 어느 곳이라도 가겠습니다.”

그러면서 전 전 대통령은 현금과 금융자산 162억 원, 연희동 자택을 포함한 4건의 부동산, 2건의 골프회원권 등 전 재산을 국가와 정부에 헌납한다고 약속했다. 물론 전 재산이란 것은 몇 년 뒤 거짓으로 드러났지만….

전 전 대통령의 백담사행 사흘 뒤인 11월 26일 노 대통령은 특별담화문을 통해 전 전 대통령의 정치적 사면을 국민에게 호소했다. 그러나 여론의 반응은 냉담해 전 전 대통령은 25개월이 지나서야 백담사 유배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김동철 정치전문기자 eastphi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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