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동관]스피치라이터

  • 입력 2005년 5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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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

미국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은 민주주의를 규정하는 사전적 정의로 세계의 교과서에 실려 있다. 학생시절 이 연설을 영어로 외우면서 ‘과연 누가 썼을까’ 궁금하게 생각한 기억이 있다. 최근 “조국이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 줄 것인지 묻지 말고…”라는 구절로 유명한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1961년 취임 연설이 백악관 스피치라이터와 참모들의 ‘짜깁기’라는 주장이 전직 미 언론인에 의해 제기됐다. 대통령의 ‘말’을 조율하는 스피치라이터는 역사의 조연(助演)이지만 역할에 따라 주연(主演)인 대통령이 빛나기도 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주연-조연 관계와 흡사하다.

▷미국에서 대통령 스피치라이터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21년 제29대 워런 하딩 대통령 때부터다. 당연히 링컨은 게티즈버그 연설을 포함한 자신의 모든 연설 원고를 직접 작성했다. 요즘은 일이 늘어나면서 스피치라이터들은 대통령의 외국 순방 시 하루 1∼2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격무에 시달린다고 한다.

▷대통령과 스피치라이터의 관계는 대통령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다. 전력(前歷)이 화려했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화려한 수식어를 싫어했다. 하지만 참모들이 써 준 대로 충실히 읽었다. 반면 아칸소 주지사 경력밖에 없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비공식 연설 때는 50% 이상을 즉흥적으로 발언했지만 타고난 순발력으로 큰 실수는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도 청와대의 연설 담당 비서관이 대통령의 각종 연설문을 작성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연설 내용을 대부분 구술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정치인이 원고를 읽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를 자주했다.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참모들이 써 주지 않은 즉흥적인 얘기를 자주 한다. “청탁하다 걸리면 패가망신시키겠다”, “대통령 짓 못해 먹겠다” 등 거친 발언은 대체로 이런 결과물이다.

이동관 논설위원 dk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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