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재교]李총리 ‘의원 경시’ 지나치다

  • 입력 2005년 2월 20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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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장관이 국회의사당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국회의원으로부터 뺨을 맞은 사건이 있었다. ‘감히’ 국회의원과 맞담배질을 했기 때문이라 한다. 요즘이 아니고 1980년대 얘기다.

이는 당시에도 다소 어이없는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해찬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한 언행을 보면, 그동안 세상이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이 총리는 지난주 국회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라,” “지난번에 다 얘기했다,” “정책질문을 하라”고 쏘아붙이는가 하면, “국회의원들이 신문에 보도된 기사 내용을 모아서 하는 수준인지 생각하면서 하는 수준인지 열심히 들으면서 메모하고 있다”고 발언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작년 10월에는 야당을 가리켜 “차떼기당”이라고 했다가 파문을 일으킨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에는 여야 의원 모두를 겨냥하였다.

이 총리는 평가받을 만한 분이다. 민주화운동에 헌신하여 몇 차례 옥고를 치렀고, 5선에 이르는 동안 뚜렷한 소신을 갖고 뛰어난 의정활동을 한 점을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 본인의 말마따나 남 듣기 좋은 소리를 잘할 줄 모르는 강직한 성품 때문에 때로는 오해를 받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리고 국경일에 대통령 대신 기념사나 읽다가 국회에 나와 두루뭉술한 답변이나 하는 총리가 아닌, 국회에서도 할 말은 하는 당당한 총리가 보기 좋은 것도 사실이다.

▼‘의원수준 평가한다’니…▼

이러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총리가 근래 국회에서 한 언행은 지나치다. 총리가 내심으로 어느 야당은 소멸되어야 마땅하다든가, 국가정책에 대하여 공부하지 않는 수준 미달의 국회의원을 가려내야겠다고 생각한들 누구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또, 총리가 그러한 내심을 갖고 있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런데 이 총리의 최근 언행은 그러한 내심이 있다고 의심하기에 충분하니 문제가 된다. 총리가 의원을 호칭할 때마다 그 이름 앞에 ‘존경하는’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면서 깍듯이 경의를 표한다는 영국의회의 전통은 먼 나라 얘기라 우리와 상관없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총리가 국회에서 여야의원들에게 면박을 주거나 의원들의 수준을 평가하고 있다는 듯한 발언을 하였다는 보도를 접하자니, 당당함을 지나쳐 오만한 것으로 보여 마뜩지 않은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국회는 행정부를 감시 견제 비판하는 기관이다. 헌법을 거론할 것도 없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아닌가. 그렇기에 노무현 대통령도 ‘국민이 대통령’이라 하였을 터이다. 국회는 국민을 대표하여 법률을 만드는 기관이고, 행정부는 그 법률을 집행하는 기관이므로 국회의 통제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총리는 행정부를 대표하여 국회의원의 대정부질의에 답변한다. 대통령이 행정부의 대표자이고 총리는 대통령을 보좌할 뿐이나, 총리가 국회에서 답변하는 경우에는 행정부를 대표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 한명 한명이 모두 국민을 대표한다. 그 의원의 선거구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을 대표한다. 이러한 원리는 우리가 채택한 민주주의의 뿌리에 해당한다.

▼국회는 국민 대표하는데▼

따라서 총리가 한 명의 국회의원이라도 경시한다면, 이는 행정부가 국회를 경시하는 것이고, 나아가 모든 국민을 경시하는 셈이 된다. 이는 결국 우리 민주주의를 뿌리부터 뒤흔드는 결과가 된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국민이 총리의 최근 언행에 대하여 영 불편해하고 있는 것이다. 행정부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을 겸허한 자세로 존중하여야 한다. 그리할 때 국가도, 주권자인 국민도 편안해질 터이다.

이재교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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