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前 살인사건 용의자 잡았지만…

  • 입력 2004년 12월 21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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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제사건이라…. 그럼 은비정 업주 살인사건도 있겠군.”

지난해 2월 말. 충남 서천경찰서 형사계 감식담당 장영현 경사(41)는 민원서류를 찾기 위해 서고에 들렀다가 우연히 눈에 들어온 ‘1994년 미제사건 파일’을 집어 들었다.

뽀얗게 먼지가 쌓인 파일을 펼쳤다. 1994년 12월 22일 오전 충남 서천군 서천읍 군사리 주점 은비정에서 업주 강모 씨(당시 41세·여)가 하의가 벗겨지고 머리와 얼굴을 심하게 맞은 채 숨진 사건이었다.

경찰은 주점 탁자 위에 빈 맥주병이 많은 점으로 미뤄 범인이 함께 술을 마시다 살해한 것으로 보고 주 고객인 40, 50대 남자를 중심으로 수사를 벌였으나 미궁에 빠졌다. 맥주병에서 지문을 발견해 대조 작업도 했지만 실패했다.

장 경사는 수사보고서와 사건현장의 맥주병에서 나온 신원불명의 지문과 혈액분석 자료를 토대로 재수사에 나섰다. 한 달간의 작업 끝에 지문이 같은 20대 용의자 A 씨를 찾아냈다. A 씨는 당시 나이가 어려 사건 발생 이후 주민등록증을 만들었고 1995년 11월에야 전산등록이 됐기 때문에 수사선상에 오르지 않았다.

보다 움직일 수 없는 증거가 필요했다. 장 경사는 A 씨 집 주변에서 잠복하며 그가 소주병에 넣어 내다버린 담배꽁초를 감식해 혈액형도 범인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장 경사는 지난달 16일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A 씨를 강도살인 혐의로 붙잡았다. A 씨는 처음에는 범행을 부인하다가 지문과 혈액형 등 관련 증거를 제시하자 시인했다.

그는 “강 씨와 술을 마신 뒤 성관계를 갖고 집에 가려는데 여자가 욕설을 해대 발뒤꿈치로 두 번 밟았다.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A 씨를 바로 풀어줘야 했다. 강도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검찰이 “고의성 입증이 어렵다. 이 경우 폭행치사나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해야 하는데 공소시효(7년)가 지났다”며 기각했기 때문이다.

공소시효는 강도살인의 경우 15년, 강간치사의 경우 10년으로 21일이 기소 가능한 마지막 날이었다.

결국 대전지검 홍성지청 측은 “이 사건은 상해치사로밖에 볼 수 없어 불기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편 21일 전북 익산시에서는 1983년 자신의 큰형을 살해한 뒤 암매장했다며 40대 남자가 경찰에 자수를 해왔다. 경찰은 그를 조사해 암매장한 유골을 찾아냈으나 살인혐의 공소시효(15년)가 만료됨에 따라 귀가시켰다.

서천=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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