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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19일 16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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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괴롭혔을까. 왜 그들은 평온한 삶에 안주하기를 거부했을까, 왜 자기학대에 가까운 탐구와 도전의지에 스스로를 불살랐을까.
‘전환기 한국 미술가 13인의 삶과 예술’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 같은 의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오윤은 화랑가를 피해 다니며 벽돌 굽기 등의 궂은일로 몸을 혹사했다. 최욱경은 사회와의 접촉을 끊고 혼자만의 작업실에 틀어박혔다. 박항섭은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 안정된 직장을 버렸다. 양수아는 낭만주의적 휴머니스트에 가까운 기질을 갖고 있으면서도 빨치산 종군화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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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진규에 이르면 자기파괴의 충동은 가장 극단적 모습으로 나타난다. ‘자신의 절망을 예술로 초극하려 했으나, 예술마저 절벽에 부닥쳤을 때’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저자는 ‘예술을 인생보다 우위에 놓았던’ 데서 이들의 운명이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이들에게 인생에서의 승리는 예술을 위해 봉사할 때 제한적으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었다. 그들의 ‘삶’은 예술 앞에서 제물이 될 위험에 항상 노출돼 있었다. 저자는 자신에게 충실하고자 했기에 남들에게는 외골수로 비쳤던 박길웅의 삶을 소개하며 “자유의 영역을 정신, 제도, 물질의 자유로 나눌 때 예술가는 정신의 자유를 택하며 대신 제도나 경제의 자유로부터 끊임없이 위협받게 된다”고 밝힌다. 그 말은 이 책에 소개된 다른 모든 예술가들에게도 적용되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들은 패배를 통하여 오히려 되살아나는 역설의 인생을 살다 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하인두의 붓끝은 암과 투병하며 마지막 ‘혼불’을 태우는 순간 가장 빛났다. 박수근이 힘겨운 생의 후반에 명성을 얻고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경제적 여유까지 눈앞에 두게 되자 운명은 장난처럼 그의 생명을 거두어갔다.
저자는 13인의 ‘삶’을 다루면서 이들의 예술세계에 대한 분석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박수근의 그림에 대해 그는 ‘서민적 출신배경, 독자적 미술수업, 기독교적 영향, 밀레에 대한 흠모, 당대 한국미를 자각하기 시작한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응결된 특유의 조형세계’로 분석한다. ‘왜색 화가’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는 박생광의 미술세계에 대해서는 “소외를 뛰어넘어 전통적 미술정신과 양식을 현대적 조형감각으로 재창조했다”고 소개한 뒤 ‘골격 없는 부드러운 선, 도시 서민적인 나약성’을 가진 일본화와 자신의 그림이 다르다는 박 화백 자신의 설명을 곁들인다.
책머리 ‘지은이의 말’에서 저자는 ‘중학교 시절의 은사’인 양수아에 대한 감사의 말을 잊지 않는다. 양수아에 대한 장(章)에서는 ‘남부군’의 저자 이태가 전하는 양수아의 빨치산 시절 풍모와 부인의 인터뷰도 싣고 있다.
저자는 현재 경희대 사학과 교수 겸 경희대 중앙박물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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