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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11월 11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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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대학 출마자 脫정치 선언▼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세계사의 조류는 변해갔고 우리 사회의 시대적 요구도 급격히 변화해갔다. 대학가의 풍경도 이제는 80년대와 많이 달라졌다. 물론 아직도 일부 대학에서는 과거의 이념적, 정치적 담론에 얽매인 지루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 총장실 점거 그리고 학생운동의 이념과는 전혀 동떨어진, 거의 반달리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기물파손 등 폭력적 방법도 종종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운동권에 동조하는 학생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대학의 정치적 이념적 학생운동은 과거의 폭발적인 에너지를 잃었다. 2003년 말 대학 총학생회 선거결과를 보면 비운동권이 총 당선자수의 75%를 넘는 반면 운동권은 25% 미만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대학생들이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졌을 뿐만 아니라 극심한 취업난 때문에 학생복지나 취업과 같은 실용적인 문제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는 데에 그 일차적인 이유가 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대학에서는 최근 대학사회의 ‘탈정치화’ 흐름을 보여주는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그 대학 중앙도서관 주변에 설치된 한 ‘80년대 민주열사’의 영정이 훼손됐던 것이다. 당시 중앙도서관 주변에서는 그 열사에 대한 추모행사 등 시위가 계속됐고, 도서관에서 공부에 열중하던 학생들은 그로 인한 소음 때문에 지장을 받는다는 불만을 제기해 오던 상황이었다. 영정 훼손 사건 이후 추모행사의 의미와 거기서 생기는 소음을 둘러싼 공방이 학교 자유게시판을 장식했다.
최근 그 대학의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측 선거운동본부(선본)는 ‘도서관 앞에서의 모든 행사 금지’를 아예 가장 중요한 공약의 하나로 들고 나왔다. 또한 최근의 한 연구결과가 말해주듯, 대학생들의 정치적 이념 성향이 진보에서 중도로 점차 바뀌고 있다는 것도 비운동권 확산의 중요한 원인이라 하겠다.
이미 15개 대학 비운동권 총학생회로 구성된 ‘학생연대 21’도 존재하고, 세계화의 흐름에 부응하는 학생회 건설을 목표로 내건 각 대학 비운동권 선본들의 연대체인 ‘세계화 학생회’ 같은 움직임도 있었다. 이렇듯 비운동권의 대두는 이미 확연한 사실이지만 지금까지 그들의 연대는 산발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대학가가 선거전에 한창인 요즘 비운동권 출마자들이 본격적인 연대 움직임을 보여 관심을 끈다.
서울대를 비롯한 홍익 경북 원광 전북 군산대 등 전국 9개 대학 총학생회장 후보들이 10일 홍익대에서 ‘신(新)학생회를 준비하는 총학생회 후보자 연대회의’를 결성하고 정치투쟁 위주의 정치편향 학생회를 지양하고 학교 내의 다양한 이해와 요구를 수용하고 실현하는 새로운 학생운동체를 제안한다고 선언한 것이 그것이다.
지금 비록 소수라고는 하지만 전국적으로 조직화된 힘을 갖고 엄청난 힘을 행사하는 대학 내 이념지향의 정치적 운동은 아직도 대학사회에서 기득권을 행사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정치권력과 시민사회운동의 중심에는 그들의 선배들이 일종의 테제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기존 운동권 대항한 새조류▼
이 점에서 기존 운동권 세력에 대항해 시대변화와 발전의 조류에 호응하는 새로운 학생회를 만든다는 비운동권의 선거연대 움직임은 앞으로 안티테제로 기능할 것 같다. 그들의 실험이 조직화된 연대를 이루어내 성공을 거둘 것인가. 그것은 아마도 이미 테제가 된 ‘운동권(출신)’들이 변화의 흐름을 수용해 자기수정을 하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을 것 같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역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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