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전망대]임규진/‘공멸’ 중단시킬 리더십 어디에…

  • 입력 2004년 11월 1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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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코넬대 코식 바수 교수의 저서 ‘정치경제학’에 따르면 안데스의 좁은 산길에서 두 사람이 마주치면 총을 먼저 쏘는 사람이 길을 건너간다.

반면에 코넬대 부근의 좁은 다리에선 반대편 자동차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다.

안데스규칙은 공멸(共滅)을, 코넬규칙은 공영(共榮)을 가져온다.

지난해 말 필자는 한국사회가 코넬규칙을 정착시키지 못하면 심각한 경제위기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했었다. 안데스규칙이 계속되면 투자와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한국경제는 중남미형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바수 교수는 안데스규칙을 코넬규칙으로 바꾸려면 지도자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집권세력이 최근까지 국민들에게 보여준 리더십은 안데스 산길 한편의 총잡이, 그 자체였다. 안데스규칙의 확산에 노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은 산길 반대편과 공존하는 것을 ‘도덕의 타락’이자 ‘역사의 후퇴’로 생각하는 것 같다.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설문조사에서 한국경제에 부정적 답변을 한 기업인들이 매국노로 취급됐다. 경제위기론은 반개혁세력의 조직적 음모로 치부됐다. 급기야 일국의 국무총리란 사람이 언론의 비판기능을 역사의 반역행위에 포함시켰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불리한 행위를 하면 헌법재판소든 동아일보든 반역자로 몰아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미 권력의 총잡이들은 산골짜기 전선으로 몰려나갔다.

이들은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절대선의 깃발을 내걸었다. 새로운 역사를 쓰려면 총잡이들은 명사수가 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투르게 총질을 하면 그들만의 역사가 후퇴할 테니 말이다.

그러나 총잡이의 사격술은 절대선의 기대에 미흡한 듯하다. 이들은 수도이전과 친일파청산, 비판언론 죽이기, 국가보안법 폐지 등을 연달아 쐈다. 수도이전은 빗나갔고 친일파 청산은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나머지 총알은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반대편으로 몰린 주민들은 코넬 마을로 도망가거나 아니면 생업을 팽개치고 총을 쏴야 하는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이런 곳에서 투자와 소비가 제대로 될 리 없다. 투자수익과 미래소득의 예측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십조원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수백조원이 꽁꽁 숨는 데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내수경기는 바닥없이 가라앉고 있는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유가급등 환율하락 수출둔화 등 외부 악재가 줄을 잇고 있다.

공멸의 게임을 중단시킬 리더십도 없고 산길 양편의 전력마저 비슷하다면 안데스마을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이런 참사(慘事)를 예방하고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국민 스스로 공멸의 주술(呪術)에서 벗어나 코넬규칙을 세워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지 않는가.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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