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목수가 헌 집 고치는 순서’

  • 입력 2004년 8월 24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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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금요일자에 연재되는 본보의 ‘우리 땅 우리 혼’ 시리즈는 국제정세에 몽매했던 시대의 아픈 민족사다. 특별취재팀이 찾아간 간도와 연해주, 백두산과 천지, 압록강과 두만강에선 한 세기 전 국권(國權) 상실의 상처를 생생히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쓰라린 것은 일제가 만주의 이권을 얻기 위해 멋대로 청(淸)에 간도를 넘겨버린 간도협약. 간도는 조선의 영토라고 앞장서 주장하던 일제가 태도를 돌변해 청과 부당한 거래를 해도 속수무책이던 당시 조선의 무기력이 가슴을 친다.

▼反의 反의 反과 그 反의 反의 끝은?▼

5년 뒤면 국제법상 무효가 명백한 간도협약이 체결된 지 100년이 되는데도 그에 대한 문제제기 한번 제대로 못하고 있는 현실이 더욱 답답하다. 그뿐 아니다. 이번 시리즈를 취재하면서 특별취재팀이 확인한 것은 영토문제에 관한 한 정부의 무신경할 정도로 소극적인 자세였다. 간도영유권 논란을 사전 봉쇄하기 위한 중국의 조직적인 동북공정이나 독도를 분쟁지역화하기 위한 일본의 집요한 농간을 떠올리면 우리 정부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까지 든다.

민족의 실지(失地)에 대한 문제제기마저 주저하면서 국권을 온전히 회복했다고 할 수는 없다. 청과의 국경회담에서 살해위협에도 불구하고 간도는 조선 땅임을 주장하면서 “내 목은 쳐도 좋으나 나라 땅은 한 치도 내놓을 수 없다(此頭可斷 國土不可侵)”고 버틴 조선대표 이중하의 당당함을 요즘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억울하게 잃어버린 강토는 광복 60년을 앞둔 지금도 벗어버리지 못한 망국의 굴레다. 바로 현재의 문제인 것이다.

청산해야 할 과거사의 순위를 매긴다면 이 같은 민족의 권리를 되찾는 것이 으뜸이어야 옳다. 영토문제를 외교의 최우선과제로 설정한 이웃나라를 곁눈질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시선을 밖으로 돌릴 때만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국가경영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 집권세력을 포함한 정치권의 시선은 나라 안에 갇혀 있다. 엄밀하게는 코드가 같은 소수의 폐쇄적인 집단 안에 갇혀 있다. 그리고 그 방향은 항상 반대세력에 고정돼 있다.

현 정권 들어 정쟁의 고리가 된 단어들을 나열해 보면 그러한 경향이 한눈에 분명해진다. 정치권은 시종 반(反)개혁과 반(反)통일 대 반(反)시장 논쟁으로 시끄럽다. 친일과 독재 대 용공 규명으로 맞선 최근의 과거사 정국은 반(反)민족과 반(反)민주 대 반(反)국가 구도로 정리된다. 그 와중에 반미(反美) 반일(反日) 반중(反中) 논란도 요란하다. 따라서 그동안의 정치활동을 반(反)이라는 한 자로 결산해도 그리 틀리진 않을 듯싶다. 바꿔 말하면 닥치는 대로 뒤집어엎으려고 한 것 외엔 한 일이 별로 없다는 얘기가 된다.

그처럼 엉뚱한 데 국가적 역량을 소진하느라 정말 중요하고 시급한 사안은 외면되고 방치되기 일쑤였다. 이래서야 우리 사회가 오래 견뎌낼 것 같지 않다. 굴곡 많고 부침 심한 역사를 반(反)으로만 재단한다면 성한 시절이 얼마나 있을까. 또한 그 시절을 헤쳐 온 지도층 인사들 중 상처입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의 경고는 언제나 비슷하다. 독립신문에 실린 ‘목수가 헌 집 고치는 순서’라는 사설은 100여년이 지난 오늘도 새길 대목이 많다. 그 일부를 소개한다.

▼개혁은 헌 집을 고치는 것과 같다▼

‘나라를 개혁하는 것도 목수가 헌 집 고치는 것과 같은지라. 일에 선후가 있고 경중이 있는 것을 생각지 않고 뒤에 할 일을 먼저 한다든지 중한 일보다 경한 일에 힘을 더 쓴다든지 하는 것은 다만 일이 안 될 뿐 아니라 이왕에 된 일도 없어질 터이니…차라리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낫지 서투르게 건드리는 것은 어서 무너지기를 바라는 것이라. 조선에서 개화한다고 한 후에 한 일을 보거드면 서투른 목수가 헌 집 고치는 것과 같은지라.’

임채청 편집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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