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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8월 20일 1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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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대 사회학과 교수로 국내 진보학계의 등뼈 역할을 하고 있는 저자의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포괄적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1987년에 개발독재적 ‘예외국가’ 시대가 종결됐다면 올해 4·15총선까지의 17년간은 ‘정상국가’로 전환하는 시기였다고 분석한다. 보수세력의 의회 독점이 깨지고 진보세력이 제도정치에 진입함에 따라 다원주의적 정치질서가 출현했다는 점에서 4·15총선은 정상적 민주국가로의 전환이 완성된 시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의 단계를 고민할 때라면서 과거의 사회운동이 ‘비정상성에 대한 저항’이었다면 향후의 사회운동은 ‘정상성에 대한 저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제안한다. 여기서 말하는 저항의 대상으로서의 정상성은 두 가지 차원에서 언급된다. 첫째는 사회적 차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 동성애자, 장애인 등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억압하고 차별하는 의미의 정상성이다. 둘째는 경제적 차원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논리에서 자율, 규제완화, 유연화 등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규정하고 이상화하는 정상화이다.
정상화에 대한 이런 분열적 문제 의식은 이 책의 도처에서 드러난다. 민주화운동을 통해 쟁취한 성과물을 정상이라고 규정하고선 다시 그 정상 상태에 안주하는 데 대한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진보세력의 제도정치 진입에 대해서도 ‘게임의 규칙(rule)’이 아닌 ‘정치적 지체(Political Lap)’를 들고 나온다. 한국 (시민)사회의 변화 속도에 비해 정치의 변화 속도가 크게 뒤져 있기 때문에 그 극심한 괴리를 줄이기 위해서는 급진 민주주의적 과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반대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에서는 탈영토화하고 탈규제화해 가는 자본주의를 공적 규제로 족쇄를 채워야 한다는 인식을 보인다. 그는 무한이익을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팽창을 ‘규칙 없는 세계화’라고 규정하면서 민주화된 규제 규칙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처럼 한쪽에선 규칙에 얽매이지 말 것을 강조하면서 다른 한쪽에선 규칙의 중요성을 말하는 형식적 모순성은 저자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또한 급진적으로 무언가를 따라잡아야 한다는 속도에 대한 강박관념이야말로 그가 비인간적이라고 비판한 개발주의의 주요 속성이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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