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북스]위기를 넘은 기업 비결은 ‘지식점프’

  • 입력 2004년 8월 6일 17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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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점프/이홍 지음/133쪽 5000원 삼성경제연구소

김인수 교수…. 일반인에겐 생소한 인물이다. 하지만 경영학계에서는 거의 신화적인 학자다. 훌륭한 논문을 많이 쓴 데다 제자들을 혹독하게 공부시키는 것으로 이름을 떨쳤다. 대학원생은 개강 첫날부터 100여쪽의 영문 논문을 읽어야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1980년 이후 한국과학기술원(KAIST)과 고려대에서 재직한 그는 장애아들을 돕는 의인(義人)이기도 했다. 작년 초 장애아 학교 앞 비탈길 빙판에서 넘어져 별세했다.

이 책의 저자는 학문의 혼을 불러일으켜 준 스승 김 교수에게 헌정하는 심정으로 집필한 듯하다. 김 교수에게서 영향을 받아 조직창의성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가의 제자답게 경영현상을 바라보는 눈이 매우 예리한 것 같다.

‘지식창조의 금맥을 찾아서’란 부제를 가진 이 책은 위기를 이겨낸 여러 기업들의 생생한 사례를 분석했다. 난관을 돌파한 열쇠는 한결같이 ‘지식’이었다. 이 책은 그 지식이 창조되는 과정을 분석해 다른 회사에서도 응용할 수 있도록 했다.

등산을 연상해보자. 낮은 곳에선 넓은 세상이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정상에 오르면 풍진(風塵)에 싸인 세간(世間)이 한눈에 탁 들어온다.

회사에 골칫거리가 생기면 처음엔 아무리 살펴봐도 해법을 찾기 힘들다. 그러다 조직구성원들이 힘을 합쳐 진정으로 치열하게 고민해 높은 경지에 오르면 해답이 보인다. ‘지식이 점프’하면 문제점이 발 아래로 보이는 것이다.

에어컨 전문 생산업체 만도위니아는 에어컨 제작기술을 응용해 김치냉장고 딤채를 만들어냄으로써 위기에서 벗어났다. LG전자는 초절전 에어컨 휘센을 개발한 덕분에 에어컨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기지 않아도 됐다.

화학공장에서 신호변환기가 고장 나면 잠시 가동을 중단하고 변환기를 교체한다. 그러나 삼성종합화학은 공장을 그대로 돌리면서 변환기를 바꾸는 기술을 개발했다. 현대자동차는 한국 최초의 독자 모델인 포니를 개발한 데 이어 엑셀, 쏘나타, 신형 엑셀, 엘란트라, 그랜저 등 고유 모델을 끊임없이 개발했다. 저자는 이들 회사를 방문해 성공과정을 철저히 살펴봤다고 한다. 지식점프가 일어난 기업에서는 그 기업 특유의 지식이 많고, 구성원들 사이에서 ‘창조적 마찰’이 일어났음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지식점프는 어떻게 이뤄지는가. 저자는 5단계로 설명한다. 의도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문제해결 과정에서 내부지식을 쌓고 노력의 강도를 더한다, 심리적 장벽을 제거한다, 심리적 함정을 극복한다, 지식점프를 위한 조직을 설계한다….

이 책은 얇고 작아서 한손에 쏙 들어오는 문고판이다. 핵심 위주로 대충대충 읽으면 두어 시간 만에도 독파할 수 있다. 그러나 찬찬히 읽으면 밑줄을 그어야 할 곳이 수두룩해 시간이 꽤 걸린다. 패스트푸드처럼 얼른 먹어 줄거리만 파악해도 도움이 되고, 두고두고 읽어가며 음미하면 더욱 풍부한 자양분을 주는 양서이다.

김 교수가 살아있다면 활짝 웃으며 저자를 칭찬할 만한 책이다.

고승철 동아일보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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