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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4월 30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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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5월 1일, 메이데이(노동절).
‘드래건 레이디(Dragon Lady)’ 한 마리가 우랄산맥 2만2000m 상공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냉전(冷戰)의 눈’ U-2기. 파키스탄에서 발진한 미국 첩보기는 구 소련의 영공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고고도(高高度) 정찰비행을 하고 있었다.
보고를 받은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격노했다. 그는 즉시 격추를 명한다.
소련군은 최신예 전투기인 미그19와 수호이9기를 출격시켰다. 그러나 요격에 실패하자 지대공미사일인 샘2를 발사한다. 제1발은 자국의 미그19기에 명중됐고, 제2발이 U-2기를 맞혔다.
조종사는 낙하산으로 탈출했다. 피격 시 기체를 폭파하고 독침으로 자살해야 하는 복무지침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하루 12시간에 걸친 심문을 견디지 못하고 “미 중앙정보국(CIA)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자백하고 만다.
소련은 “도발행위”라며 격렬히 항의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처음엔 “기상관측용”이었다고 둘러댔으나 결국 “임기 내에 U-2기의 비행을 중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끝내 사과는 거부했다.
흐루시초프 서기장이 유엔에서 구두를 벗어 단상을 두드리며 미국을 비난하는 ‘세기의 해프닝’을 연출했다는 게 바로 이때다.
U-2기 격추사건으로 냉전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1959년 제1차 미소정상회담으로 움트던 동서 해빙무드는 차갑게 가라앉았다. 소련 내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흐루시초프 서기장은 대미유화정책을 접는다.
1955년 록히드 항공사가 개발한 U-2기는 어떻게든지 ‘철의 장막’을 들여다보고자 했던 냉전의 산물이다. 주간이든 야간이든, 악천후에 관계없이 적진 깊숙이 고공(高空)침투한다.
1962년 쿠바에 소련제 미사일이 있다는 증거 사진을 찍었고, 1968년엔 동해에서 미 함정 푸에블로호의 나포 사실을 맨 처음 탐지했다.
주한미군에도 3대가 배치돼 휴전선을 따라 24시간 교대 비행하고 있다. 북한 영공 바깥에서 ‘전자적 침입’을 통해 평양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한 번 출격에 100만달러(약 11억원)가 소요된다고.
지금 이 순간에도 U-2기는 ‘냉전의 고도(孤島)’를 떠돌고 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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