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4년 3월 16일 22시 53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건국 이후 대통령 권한대행은 6번째이지만, 대통령 유고에 따른 권한대행은 고건 권한대행이 유일하다. 허정 곽상훈 박정희 최규하 박충훈 권한대행은 헌정중단으로 인한 대통령 궐위로 권한대행이 됐다. 곽상훈 권한대행은 6일간, 박정희 권한대행은 1년9개월 가까이 재임했다.
▼탄핵은 정변도 쿠데타도 아니다▼
외신의 표현대로 대통령도 있고 권한대행도 있는 ‘기괴한 상황’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 탄핵파는 ‘신(新)갑신정변’이라고 환호했고 반대파는 ‘의회 쿠데타’라고 성토했다. 하지만 모두 무책임한 과장이고 선동이다. 헌법 절차에 따른 탄핵소추가 정변일 수는 없다. 쿠데타는 더욱 아니다.
지금은 탄핵정국일 뿐이고, 논란의 핵심은 소추의 실체적 적합성이지 절차적 적법성이 아니다. 2002년 대선 민의(民意)와 2000년 총선 민의의 충돌 논란 역시 무의미하다. 탄핵소추는 권력분립 원칙에 입각한 가장 고전적인 국회의 대정부 통제기능인 때문이다. 국회가 민의에 충실했는지 여부는 4·15총선에서 심판받으면 된다.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도 정변이나 쿠데타의 공포를 찾아볼 순 없다. 시민의 일상은 곧 평온을 회복했고, 시장의 동요는 미미한 수준에 그쳤다. 도로 한쪽에선 탄핵 지지집회가, 다른 한쪽에선 반대집회가 열려도 충돌하는 법이 없다. 시위 현장에 돌멩이와 최루탄도 난무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변화나 충격은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만큼 우리 사회의 총체적 역량이 성숙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안정이냐 혼란이냐’ 혹은 ‘민주냐 반민주냐’는 오늘의 쟁점이 될 수 없다. 그런데도 호들갑을 떠는 것은 정정(政情) 불안에 따른 반사이익을 노리는 정치세력뿐이다. 국민은 무고(無故)한데 아직 정치권만 유고인 셈이다.
까닭은 자명하다. ‘3·12탄핵’은 정국에 불가역(不可逆) 변화를 초래했다. 한국 정치는 이제 결코 3·12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파국적 상황을 맞았다는 얘기다. 과거 17년간의 정치 캘린더가 1987년 6·29선언으로부터 시작했듯이, 향후 정치 캘린더는 3·12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도 된다.
이 같은 절박감과 함께 불확실성이 각 정파에 ‘올인’을 강요하고 있다. 탄핵심판 및 4·15 총선 결과에 따라서는 정파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됐으나, 누가 축배를 들고 누가 독배를 들지 한치 앞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다. 그것이 현재보다도 탄핵심판과 총선 이후 정국이 더 불안한 이유이기도 하다.
탄핵심판은 헌법재판관들을 믿고 기다리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승복하면 그만일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요동칠 총선 표심이다. 그것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표출될지는 알 수 없지만, 탄핵정국으로 조성된 감성적 선거 분위기와 그로 인한 지나친 쏠림현상 징후가 예사롭지 않다.
▼지나친 불균형은 반동을 부른다▼
여야의 현저한 의석 불균형과 그에 따른 힘의 편재(偏在)는 익히 경험한 것처럼 4년 내내 국민을 괴롭힐 가능성이 있다. 독주와 견제, 비타협과 저항으로 정국 파행이 일상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야 어느 쪽이 이기더라도 7 대 3이나 3 대 7의 배분보다는 6 대 4나 4 대 6의 배분이 안정적이겠고, 그보다는 5.5 대 4.5나 4.5 대 5.5의 배분이 더 안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71%의 득표를 한 러시아 대선도 오히려 서방의 우려를 샀다. 지나친 불균형은 언제나 반동을 부른다.
임채청부국장 cclim@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