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송영언/조순형 대표의 岐路

  • 입력 2004년 3월 16일 19시 07분


탄핵소추안 가결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버렸지만 조순형 민주당 대표는 노무현 대통령이 좋아하는 정치인이었다. 지난해 12월 초 조 대표 취임 직후다. 노 대통령은 사석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그분이 대표가 될 줄 미리 알았으면 분당은 안 해도 됐는데…. 후회스럽다.”

조 대표는 이미지가 좋은 정치인이다. 정파를 가릴 것 없이 여러 정치인이 그의 깨끗함을 인정하고 존경한다. 20년 가까이 정치를 하면서 한번도 비리 의혹에 휩싸인 일이 없다. 시민단체나 언론이 평가하는 의정활동 성적도 매번 상위권이다.

언론이 조 대표에게 붙여준 별명은 ‘미스터 쓴소리’다. 잘못 가는 권력이나 정치인에 대해 자주 곧은 소리를 하고, 이런 말들이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었다. 조직도 돈도 없는 그가 당 대표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좋은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조 대표의 이 같은 도덕적 우월성은 분당 이후 지리멸렬해진 민주당을 이끄는 힘의 원천이었다. 권력의 오만함을 꾸짖는 목소리에는 설득력이 있었다. 지역주의 벽을 깨겠다며 지역구를 서울에서 대구로 옮기기로 한 결심도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그 무렵 민주당의 인기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을 앞섰다.

그러나 언제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는 듯 조 대표는 지금 정치 입문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탄핵 역풍’이 휘몰아치면서 민주당 지지도가 4∼5%대로 급락했다. 어제 한 여론조사에서는 민노당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서청원 의원 석방동의안 통과 등 한나라당과의 공조가 본격화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는 게 여론조사기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었고 호남 등 전통적 지지기반의 이탈이 가속화됐다는 것이다. 탄핵안 가결은 이런 상황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

조 대표와 민주당은 억울한 모양이다. 탄핵의 불가피성을 적극 설득하면 당 지지도가 올라가고 헌법재판소도 원안대로 심판해 줄 것으로 믿고 있는 분위기다. 조 대표는 당내 퇴진 요구 세력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등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조 대표를 보는 시각은 두 갈래다. 하나는 그래도 그가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개인 정치인이나 관전자로서는 훌륭하지만 당 지도자로선 한계를 보였다는 것이다. 가까이는 헌재(憲裁)가, 멀게는 역사가 그의 공과를 평가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당이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게 중요하고 그러자면 남이 하는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게 옳다고 본다. 무엇보다 자신만 옳고 정의롭다는 ‘도덕적 나르시시즘’에 빠져 자기 잣대로만 세상을 본 것이 오늘의 당 위기를 초래했다는 분석이 많다. 지나친 자기 확신이 여론의 흐름을 유리한 쪽으로만 해석하게 했고 이것이 정치적 무리수로까지 이어지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개인적인 이미지와 정치권의 부조화(不調和)가 결국 그에 대한 평가마저 혼란스럽게 했는지도 모른다.

부친인 유석 조병옥(維石 趙炳玉)에 이어 47년 만에 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그가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지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송영언 논설위원 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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