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최영해/대통령정책실장은 '민원실장'?

  • 입력 2004년 1월 28일 18시 27분


27일 오후 2시30분. 박봉흠(朴奉欽) 대통령정책실장은 청와대를 방문한 박맹우 울산시장과 고원준 울산상공회의소 회장, 김철욱 울산시의회 의장, 송철호 변호사(울산종합대 유치위원장) 등을 만나 울산지역 국립 종합대 설립 건의서를 전달받았다.

110만 울산시민 중 60만명이 서명한 건의서에는 울산에 국립대가 없기 때문에 한해 6000∼7000명의 울산 출신들이 타지로 유학을 떠난다는 절절한 하소연이 담겨 있었다.

같은 광역시인 대구 인천 광주 대전 등에 국립대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요청은 설득력이 있다.

문제는 이날 면담이 최근 청와대측의 ‘총선 올인’의 일환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느낌이 짙다는 점이다. 실제 이날 면담은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우리당에 입당한 김혁규(金爀珪·전 경남도지사) 대통령경제특보가 다리를 놓았다.

당초 울산지역 인사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기로 돼 있는 것으로 알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3시 열린 노 대통령 주재 안보관계 장관회의 때문에 대통령 면담은 무산됐다.

박 실장은 이 자리에서 “종합대는 어려우니 산업기술대를 설립하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으나 울산 지역 인사들은 국립 종합대를 설립해 줄 것을 거듭 요구해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 실장은 “대통령이 나에게 전권을 주었고, 다음에 대통령을 만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이들을 달랬다는 후문이다.

올해 들어 울산지역에서는 일부 단체장의 한나라당 탈당과 열린우리당 입당을 조건으로 청와대가 국립대 설립을 허용해 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머리를 떠나지 않은 것은 부처 현안을 조율해야 할 정책실장이 지역민원 해결사로 나서면 ‘경제 살리기’는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더욱 큰 걱정은 혹시라도 지역 민원 해결에 청와대가 발 벗고 나서 ‘총선용 선물’을 준다는 소문이 날 경우 너도 나도 청와대에 줄을 대려는 소동이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최영해 정치부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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