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부형권/정동영은 어떤 '희생'택할까

  • 입력 2004년 1월 20일 17시 22분


“재미있네.”

열린우리당 정동영(鄭東泳) 의장은 19일 오후 대전에서 민주당 조순형(趙舜衡) 대표의 ’대구 출마 전격 선언’ 소식을 취재기자단으로부터 전해 듣고 이렇게 첫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구체적인 언급은 피했다. 정 의장은 기자들이 “입장을 밝혀 달라”고 거듭 요구하자 망설이던 끝에 “어디를 가든 정치개혁과 민생안정에 힘쓰기 바란다”는 밋밋한 답을 내놓았다.

정 의장은 20일 오전 상임중앙위원회의에서야 뒤늦게 구체적 반응을 보였다. 그는 전날 자신의 어정쩡했던 태도에 대해 “조 대표의 대구행 소식에 처음엔 놀라서 ‘왜 그러시지’라고 반문했다”고 해명한 뒤 “많이 고민하고 내린 결단이라고 생각한다. 그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뒤늦게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다음과 같이 ‘토’를 달았다.

“조 대표가 진정으로 지역구도를 넘기 위해 고민했다면 우리당과 함께했어야 했다. 우리는 그것을 넘기 위해 자기희생의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조 대표의 결단에는 최근 지지율이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는 민주당의 위기의식이 작용한 게 사실이다. 영호남 양쪽에서 일정 수준의 지지를 받고 있는 열린우리당의 ‘선전’도 요인의 하나였을 것이다. 실제 열린우리당 창당은 여러 가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지역극복 경쟁’이란 순기능의 역할을 한 게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정 의장은 조 대표의 결단을 평가절하하기보다는 조 대표가 제시한 ‘지역주의 극복’이란 화두(話頭)에 화답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는 생각이다.

과거 민주당 후보로 부산에서 여러 차례 낙선했던 같은 당 김정길(金正吉) 상임중앙위원이 조 대표의 대구행을 “지역주의를 깨기 위한, 정치적으로 큰 결단”이라고 높게 평가한 것이 돋보인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정 의장은 얼마 전 한나라당 박진(朴振) 대변인이 ‘종로에서 맞붙자’고 제안했을 때도 “유권자의 선택에 맡기겠다”며 애매하게 비켜 갔다.

지역주의 극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자기희생에 바탕한 실천이다.

부형권 정치부 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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