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피터 벡/미국에도 정경유착 있지만…

입력 2003-12-17 18:33수정 2009-10-10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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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은 지금 정치인에 대해 역겨움을 느낄 일이 하나 둘이 아닐 것이다. 보통사람들이 일자리를 구하고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과 정치인들은 수십억원의 돈을 주고받았으니 화가 날 만도 하다.

이제는 어떤 정당이 불법자금을 받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받았느냐가 문제가 되고 있다. 공모한 정치인과 기업인들을 모두 교도소에 보낸다면 살아남을 사람이 있을까 걱정해야 할 정도다.

한국의 정치시스템은 대단히 부패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다 나은 시스템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취임할 때 모두 부정부패를 없애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하나같이 부패 스캔들과 함께 임기를 마침으로써 정치에 대한 거부감과 실망을 키워왔다.

그렇다면 이 악순환을 끝낼 방법은 없는 것인가. 미국도 200년 이상 이 문제에 대해 씨름해 왔다. 그런 점에서 정경유착이나 부정부패라는 한국병은 미국병이기도 하다. 핵심은 이 고질병이 치명적인 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미국도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국에 도움이 될 몇 가지 교훈은 있다.

미국에도 정경유착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캔들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에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는 정경유착이 어느 정도 합법화돼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민주국가에서 돈 있는 사람들은 항상 권력자들과의 끈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 따라서 최선의 방법은 돈의 흐름을 감시 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미국에는 대통령 후보가 모금할 수 있는 선거자금의 한도가 없다. 부시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무려 2억달러를 모금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그는 거의 매일 모금행사에 참석한다.

한국과 다른 점은 미국 정치인들은 공개적으로 돈을 받고 유권자들이 볼 수 있도록 정기적으로 보고서를 제출한다는 사실이다. 선거자금 모금 과정은 엄청난 시간이 소모되고 보기에도 좋지 않지만 투명한 것만은 사실이다.

회계 부정으로 문제가 된 엔론사의 경우 회사 대표가 부시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이고 지난 대선 때 선거자금 최대 기부자였지만 부시 대통령은 별 문제가 없었다. 백악관이 엔론사의 범죄행위에 전혀 관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엔론사 대표가 선거자금을 기부하고 부시 대통령 및 그 참모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에너지 정책을 ‘상담’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법적이다. 백악관은 행정부의 특권과 국가안보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엔론사와의 회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정경유착의 가능성을 줄이는 방법은 정부 관리와 기업 관계자들이 만나 대화한 내용을 보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투명성은 높아지지만 정부 의사결정의 효율성은 낮아질 것이다.

딕 체니 부통령이 회장으로 일한 에너지건설업체 핼리버튼이 20억달러 규모의 이라크 재건사업을 수의계약 했지만 그가 핼리버튼에서 매년 15만달러를 연금 명목으로 계속 받는 것은 합법적이다. 적자투성이였던 핼리버튼은 체니 부통령 취임 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를 찾아냈다.

부시 대통령은 최근 핼리버튼이 약 6000만달러를 부당 청구한 것 같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국방부 감사도 진행 중이다. 결국 미국 유권자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만 남아 있다.

기업에서 정치권으로 돈이 흘러가는 것을 막는 것은 실제로 불가능하다. 미 대법원도 지난주 선거자금 개혁법 재판에서 이를 인정했을 정도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최선의 방법은 정치자금 모금과 지출에 관한 현실적인 한계를 정하고 엄격한 보고 의무를 부과하는 등 과정을 규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유권자들은 투표하기 전에 내용을 제대로 알고 결정할 수 있게 된다.

투명성은 선거에서 승리한 사람이 취임한 뒤에도 유지돼야 한다. 정부 고위관리와 기업 관계자들의 회의는 감시돼야 하며, 정부 사업의 계약은 경쟁에 의해 이뤄지고 엄격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정부가 부자들의 정부가 아니라 국민의 정부가 될 수 있다.

피터 벡 워싱턴 한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 조지타운대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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