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호기/진정한 세대교체를 위하여

  • 입력 2003년 12월 9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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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 사회의 화두는 ‘세대’였다. 미풍으로 시작한 ‘세대 바람’은 월드컵 거리 응원에서 돌풍으로 변했으며, 급기야 대선에서는 태풍의 위력을 발휘한 바 있다. 세대의 부상을 물론 과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 놓여 있는 흐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변화에 대한 열망이다.

▼총선 물갈이 나이는 기준 안돼 ▼

최근 한나라당에서 제기되는 중진 용퇴론은 세대 바람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일견 나이 많은 다선 중진을 겨냥한 듯한 이른바 ‘물갈이론’은 실제로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 중진파와 소장파간의 긴장으로 볼 수도 있으며, 수도권과 영남권간의 갈등으로 읽을 수도 있다. 총선의 첫 단추가 공천에 있다면 공천을 둘러싼 주도권 다툼은 이미 시작된 듯하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도 그렇게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바야흐로 내년 총선에서도 세대는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은 중진파와 소장파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점이다. 정치 영역에서 세대 구분은 단순히 ‘생물학적 나이’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진단하고 변화를 모색하는 열정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이뤄진다. 따라서 나이든 세대는 퇴영적인 반면 젊은 세대는 개혁적이라는 주장이나, 나이든 세대는 연륜이 있는 반면 젊은 세대는 미숙하다는 주장 모두 그렇게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우리 정치권에서 물갈이 내지 세대교체가 불가피한 것이라면 이는 구태의 답습 여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구태란 지역주의, 1인 보스주의, 낡은 이념 구도에 기반한 정치를 말한다. 소장파라 하더라도 구태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면 중진과 다를 바 없으며, 반대로 중진이라 하더라도 개혁 지향적이라면 소장파로 봐야 할 것이다. 요컨대 물갈이론은 나이나 선수(選數)가 아니라 정치적 역량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돌아보면 70년대 초반 ‘40대 기수론’ 이후 세대교체는 오랫동안 지연돼 왔다. 문제는 그 이후 등장한 정치인들 역시 권위주의적인 ‘3김 정치’의 구태 속에서 성장해 왔다는 점이다. 그 결과 1987년 이후 15년 동안 민주화가 진행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주주의는 여전히 발육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으로 ‘3김 정치’가 외형적으로는 종식을 고했지만 우리의 정당정치는 본질이 바뀌지 않은 채 지속되고 있다.

물갈이론이 우리 정치 쇄신의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전제돼야 한다. 첫째, 생물학적 나이가 아니라 시대적 감각과 개혁 마인드에 기반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다. 사회의 다른 영역은 이미 디지털화돼 있는데 정치는 여전히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아날로그 정치란 지역할거주의, 파당적 계보, 냉전적 이념 구도에 기반하면서 국민의 이익은 도외시한 채 자신들만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치다. 바로 이런 아날로그 정치를 여전히 고수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진정한 물갈이 대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유권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아날로그 정치의 일차적인 원인은 정치권에 있지만 국민 또한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역주의만 해도, 지역주의 투표를 선택하는 유권자 또한 면책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을 궁극적으로 심판하는 주체는 다름 아닌 유권자들이다. 따라서 국민은 정치권이 바람직한 세대교체를 할 수 있도록 정치적 냉소주의에서 벗어나 더욱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유권자도 냉소주의 벗어나야 ▼

무릇 개혁은 제도 개혁과 세대교체를 통해 이뤄진다. 제도의 운영도 결국 사람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라면 적절한 세대교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일찍이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열 책임감 균형감각을 정치가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으로 꼽은 바 있다. 우리 사회가 간절히 원하는 정치인은 바로 이 세 가지 덕목에 더해 21세기적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가들이다. 다가오는 총선이 새로운 세대교체의 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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