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황진영/‘선거 폭로戰’ 그뒤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8시 26분


검찰은 9일 지난해 대선에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부인 한인옥씨가 기양건설측으로부터 10억원을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한 세경진흥 김선용 부회장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김 부회장과 공모해 기자회견에서 한씨의 10억원 수수설을 제기했던 이교식 전 기양건설 상무는 이미 1심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뿐만 아니라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폭로한 인사들도 유죄를 선고받았거나 기소돼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병풍(兵風)’ 사건의 김대업씨는 1심에서 1년6월의 실형을 선고받았고 이 전 총재의 20만 달러 수수설을 제기한 민주당 설훈 의원은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다.

이들의 폭로가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재판을 통해 최종적으로 밝혀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이들이 거짓말을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김씨의 경우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갖고 폭로를 일삼은 행위’에 국한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병풍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전 총재의 두 아들이 병역을 면제받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법원이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김씨에 대한 유죄 선고는 근거 없이 상대를 흠집 내는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에 대한 단죄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적지 않다.

문제는 이 같은 법원의 판결 추세에도 불구하고 확인되지 않았거나 구체적인 근거가 없는 내용을 폭로하는 구태가 정치권을 중심으로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김무성 의원이 지난달 정기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유시민 의원이 지난해 대선 직전 중국 베이징의 북한대사관을 수차례 방문했다는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가 불과 몇 시간 뒤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돼 사과한 것이 단적인 사례다.

그동안 총선이나 대선이 있을 때마다 각종 폭로전이 난무했지만 선거가 끝난 뒤 책임을 제대로 묻지 않고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폭로를 주도하는 국회의원들은 면책특권이나 여야의 고소고발 취하 등으로 법의 심판으로부터 비켜 서 있는 경우가 많았다.

김선용 이교식 김대업씨 등의 사례는 검찰과 법원이 근거 없는 폭로에 대해 강한 단죄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유권자들도 무분별한 폭로로 정치권과 사회를 불신의 늪으로 몰아넣는 정치인들을 가려내 준엄한 심판을 해야 한다. 그 길만이 ‘막가파’ 식의 폭로 문화를 바꿀 수 있는 길이다.

황진영 사회1부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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