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용관/민주당 어디에 있나

  • 입력 2003년 10월 21일 1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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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이 열리기 직전인 21일 오전 9시15분.

급히 연락을 받고 국회 민주당 대표실로 속속 들어서는 박상천(朴相千) 대표와 조순형(趙舜衡)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최고위원 상임고문 등 당 지도부 15명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 대표는 회의 첫머리에 “국가 현안과 당 개혁안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최고위원 상임고문 연석회의를 소집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회의의 ‘진짜 주제’는 전당대회를 언제 열 것이냐, 지도부 선출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회의는 무려 3시간반 동안 계속됐다. 당 지도부는 배석했던 당직자들을 내보내고 비공개 회의를 진행하더니 본회의장에 있던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까지 급히 불러들였다.

오전 11시45분. 유종필(柳鍾珌) 대변인이 “박 대표가 중요한 발표를 할 것”이라며 취재 및 카메라 기자를 불렀다.

대표실에서 박 대표의 ‘중대 발표’가 시작됐다. “전당대회 시기와 관련해 그동안 11월 말 전에 해야겠다고 당내 중진의원들에게 이야기했으나 정확한 시기는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전당대회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퍼지고 있어 아예 날짜를 11월 28일로 정했다.”

박 대표의 발표가 끝나자마자 김영환(金榮煥) 정책위의장이 “박 대표가 당원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결단을 내렸다”며 기자들 앞에서 뜬금없이 박수를 유도했다. 어느 최고위원은 “민주당이 합의를 통해 개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과시했다”고 자화자찬을 늘어놓기도 했다.

기자는 이 장면을 지켜보며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민주당으로서야 새 지도부를 구성하는 문제가 그 어느 사안보다 시급할 수도 있다. 분당(分黨) 후 민주당 내에서는 이른바 정통모임측과 중도파가 당권 문제를 놓고 티격태격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미래는 분당으로 ‘반쪽’난 당의 지도부를 언제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는 게 결코 아니다. 오히려 공당(公黨)으로서 그보다 더 급한 일은 국가 현안, 그중에서도 민생 경제를 어떻게 회생시킬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내놓아 ‘민심’을 잡는 것이다.

민주당이 이날 지도부 구성 문제로 장시간 티격태격하는 동안에도 국회 본회의장에서는 “우리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대정부 질문이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민주당 지도부도 뒤늦게 본회의가 개회 중이란 점에 생각이 미친 듯, 발표가 끝나자 “자, 이제 본회의장으로 갑시다”라며 멋쩍은 표정으로 자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오전 회의는 끝나가고 있었다.

정용관 정치부기자 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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