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政資法 개정, 국회에 맡길 수 없다

  • 입력 2003년 9월 3일 18시 22분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정치관계법 개정의견’ 중 정치자금 부분은 제대로만 운용된다면 ‘깨끗한 선거’의 초석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무엇보다 선관위가 모든 정치자금의 수입과 지출을 실사(實査)하고, 이를 위해 자료제출 요구권과 조사권, 동행명령권을 갖도록 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일정액 이상 기부자의 실명 공개, 선거자금의 수표 또는 신용카드 사용 의무화도 ‘검은돈’의 흐름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예상대로 선관위의 개혁안에 대해 벌써부터 소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겉으로는 정치자금 투명화라는 총론에 찬동의 뜻을 표하면서도 속으로는 자신의 돈줄을 죄는 규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신분이 드러나면 누가 돈을 주겠느냐’는 일부 정치인들의 말에 그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특히 개혁안을 다루게 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 중 이런 생각을 하는 의원이 적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이들이 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가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정권에서도 각 정당이나 국회에 정치개혁특위가 구성돼 활동했지만 이렇다할 성과물은 없었다.

그런 잘못을 되풀이해선 안 된다. ‘굿모닝 게이트’와 ‘현대비자금사건’이 불거지면서 지금 국민 사이엔 ‘깨끗한 정치’를 바라는 열망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마당에 정개특위에서 마냥 시간을 끌다가 선거가 임박해 여야 담합으로 정치자금법을 처리해 버리는 일이 재발한다면 국민적 저항을 면치 못할 것이다.

선택은 하나다. 여야 대표가 이미 합의한 대로 정치권 학계 시민단체 등 각계 대표가 참여하는 범국민 정치개혁특위를 하루빨리 발족시켜 이 문제를 논의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현역의원의 이해타산에서 벗어나 국민의 편에서 사안에 접근할 수 있다. 개혁대상이 개혁을 할 수 없듯이 정치자금법 개정을 정치권에만 맡길 수는 없는 일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