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 특검법 표류 누구 책임인가

  • 입력 2003년 7월 11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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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이 제출해 국회 법사위를 통과하고 청와대가 수용의사를 밝힌 새 특검법 수정안이 어제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돌연 폐기됐다. 대신 한나라당은 당초 원안보다도 수사대상을 더 확대한 재수정안을 마련해 정국이 거센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이번 사태는 기본적으로 여야의 복잡한 집안사정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그 질이 더욱 나쁘다.

국민적 의혹을 받고 있는 대북 송금 사건의 진상은 낱낱이 규명돼야 한다는 본란의 기조엔 변함이 없다. 관련 비리 의혹으로 수사대상을 한정한 수정안에 대해서도 우리는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런데도 청와대와 민주당에 수정안을 받아들이라고 촉구한 것은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시기에 정국경색으로 인한 국력 소모를 막아 보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대북 송금 사건 및 관련 비리 의혹에다 북한의 고폭실험 의혹까지 추가한 재수정안을 마련하면서 이 같은 취지가 무색해졌다. 최병렬 대표는 김대중 정부가 북한의 고폭실험을 알고도 대북지원을 계속했는데 면죄부를 줄 수 없다며 태도를 바꿨지만 그 바탕엔 수사대상을 축소한 수정안에 대한 당내 반발을 무마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최 대표의 사정변경론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한나라당 단독으로 법사위를 통과시킨 수정안을 스스로 폐기해 정치행위의 신뢰나 예측가능성을 무너뜨린 것은 다수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박관용 국회의장이 여야간 의사일정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재수정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이를 의식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특검은 안 된다며 억지를 부려온 민주당이 그 빌미를 제공한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결국 대통령에게 모든 부담을 떠넘기려는 게 아닌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토록 하는 방향으로 몰고 가려는 암묵적 합의가 있지 않느냐는 의심까지 든다. 특검 논란은 구실일 뿐 속으로는 ‘검은 계산’만 하고 있는 여야 모두 정국파탄의 공범이란 비난을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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