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노자:삶의 기술…노자-도덕경연구 업그레이드

  • 입력 2003년 7월 11일 17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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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김홍경 지음/880쪽 3만2000원 들녘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서 나온 노자 연구서 가운데 관련 자료를 가장 풍부하게 섭렵한 성과라는 점에서 존경과 시샘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저자가 참고한 자료는 고주(古註)를 비롯해 청대 이후 고증학의 성과, 백서(帛書)와 초간(楚簡) 등 근래의 발굴자료, 학계의 기존 연구 성과, 중국의 고전문헌 등을 두루 망라하고 있다.

또한 이 성과는 비전공자의 손에 의해 이뤄졌다는 점에서 놀라움과 부끄러움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저자의 학위논문은 조선조 관학파 유학자들의 사상에 관한 것이었다. 요컨대 전공이 도가철학이 아닌 것이다. 박사과정이라는 인생의 짧은 한 시기에 선택한 연구주제가 전공이라는 이름으로 주홍글씨처럼 평생을 따라 다니는 우리의 자폐적 학문풍토에서 이것은 작심한 ‘반역’이기 때문에 더욱 놀랍다. 그러니 전공의 우산 아래 안주하고 있는 나 같은 사람은 당연히 부끄러울 수밖에.

물론 이 책에서 개진되고 있는 주장들에 대해 모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이 책의 가장 독창적 부분인 ‘노자’의 성립과 관련된 몇 가지 주장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진함을 느낀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노자’는 기원전 286년에서 백서 갑본이 성립된 기원전 202년 사이의 어느 시기에 편집된 책이고, 편집의 기본텍스트가 된 책은 ‘여씨춘추’일 가능성이 높으며, 따라서 진시황의 진나라에서 편집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좀 더 명확한 논거가 필요하다. 가령 ‘노자’는 초간과 같은 원시자료들을 종합해서 편집된 책이므로 초간은 아직 ‘노자’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러면 초간의 순서가 왜 백서의 순서로 이행되어 왔는지에 대해서도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백서의 장의 순서가 초간보다 주목할 만한 장점을 지니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것은 반드시 짚어야 하는 문제이다. 만약 이 점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한다면 결국 후대의 어떤 편집자들이 아무런 이유 없이 기존의 순서를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당연히 비합리적이다.

또 저자의 주장처럼 초간의 갑 을 병 세 부분은 각각 독립적 텍스트일 확률이 높고 초간이 ‘노자’의 성립 전에 존재했던 다양한 편집 자료들 가운데 하나라면, 통행본 속에 이 3종의 초간의 내용이 기본적으로 모두 들어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합리적 설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후대의 편찬자들이 중복되는 것만 제외하고 전해오는 모든 자료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종합했다고 가정해야 한다. 만약 그렇다면 ‘노자’는 어떤 통일적인 구상에 의하여 편집된 결과물이 아니라 ‘노자’와 관련된 단편적인 자료들을 모두 모아놓기만 한, 단순 자료모음집일 뿐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노자’가 ‘여씨춘추’를 텍스트로 삼아 진나라에서 편집된 책이라는 저자의 주장과도 조화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런 미진함에도 불구하고 앞에서 말한 이유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의 동양학 연구풍토에서 신선한 충격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책을 ‘욕심스러운 책’이라고 말하는데, 이런 욕심은 많이 부릴수록 좋다.

박원재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원 hundun@ch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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