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非常]<9>지방금융이 무너진다

입력 2003-06-08 17:33수정 2009-10-10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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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남구에서 소규모 기계부품 제조업체인 S산업을 경영하는 박모 사장(41)은 지난달 설비를 늘리는 투자를 계획했다. 100평 규모의 현재 공장은 직원들이 일하기에 좁아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다. 또 새로 확보한 거래처가 요구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서는 라인을 늘려야 할 상황이다. 인근 땅 300평을 사들여 공장을 증설하려 했던 것. 작년까지만 해도 월평균 3000만원 정도이던 매출은 올 들어 10% 정도씩 줄어들면서 요즘은 직원들 월급 주기에도 빠듯하다. 이런 상황에서 매월 2000만원어치의 물건을 꼬박꼬박 납품해달라는 새로운 거래처의 주문은 박 사장에게 단비와도 같았고 증설을 위한 대출을 꼭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은행 대출을 받으려다 황당한 얘기만 듣고 포기하고 말았다. 3곳의 은행에 1억2000만원의 대출을 신청했더니 담당 직원들은 한결같이 “S산업이 부도나면 그 땅을 당장 처분해서 대출금을 회수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연재물 목록▼

- <8>돈 혈맥이 막혔다
- <7>지방의 소비와 유통
- <6>벼랑에 선 노사관계
- <5>실업의 두 얼굴
- <4>투자 안하는 경제
- <3>벤처 희망은 없나
- <2>고비 맞은 중소기업
- <1>위기의 수출산업

박 사장은 “공장 부지의 감정가가 2억원이고 새로 확보한 거래처에 안정적으로 납품을 하면 대출금을 곧 갚을 수 있을 것”이라고 사정했지만 은행 직원들은 “요즘 중소기업 대출 부실이 많아서 7000만원 이상의 대출은 곤란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차입을 포기한 박씨는 대출 문턱이 낮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지방 금융이 빠른 속도로 허물어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경기 침체로 늘어나는 부실채권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이 돌지 않는다. 여유자금을 예금으로 받아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대출해주는 자금 중개 기능이 무뎌지고 있는 것.

이런 현상은 서민이나 자영업자, 중소기업을 주로 상대하는 신용협동조합, 상호저축은행(옛 신용금고), 새마을금고 등 서민금융기관에서 두드러진다.

▽허약한 대출=지금까지 저축은행 등 서민금융기관의 주요 고객이었던 여관 식당 등 소규모 자영업자 대출시장도 시중은행과 지방은행들이 공격적인 영업을 펼치면서 대구 A저축은행은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A저축은행 K사장은 “작년에는 40억원의 이익을 냈는데 올해는 적자만 면해도 다행”이라며 “서울은 지방에 비해 경기가 조금 낫다고 하니 서울의 중소 상공인을 대상으로 200억원정도의 대출을 운용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땅히 대출해 줄 곳이 없는 A저축은행은 예금금리를 계속 내려 수신고도 줄여가고 있다.

지난해 연 6%대였던 예금금리를 올해 초 5.5%로 인하했고 지난달 말에는 다시 4.9%로 낮췄다.

부실대출 문제도 심각하다. A저축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10억원 이상 고액 대출을 회수하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의 연체율이 급증해 불안한 대출은 거둬들이고 있는 것. 1년 가까이 고액 대출을 회수한 결과 A저축은행의 대출 잔액은 현재 900억원 정도로 작년 상반기에 비해 200억원 줄었다.

대출의 부실은 A저축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전국 114개 저축은행의 3월 말 현재 평균 연체율(1개월 이상)이 21.1%에 이른다. 작년 말에 비해 1.7%포인트, 작년 6월 말에 비해서는 3.2%포인트 높아졌다. 전체 저축은행의 연체금액은 4조2817억원으로 외환위기 이후 처음 4조원을 넘어섰다.

▽줄어드는 예금=7000여명의 조합원을 가진 경남 창원의 B신용협동조합은 올 3월 정기적금 계약액이 31억원으로 지난해 3월의 46억원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이달 들어서는 신규 적금 가입실적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매월 수입의 일부를 떼어 적금을 붓는 조합원들로부터 예금을 받아 대출하는 것이 B신협의 사업모델. 조합원의 예금이 갈수록 줄어드니 수익을 낼 ‘씨앗’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B신협 관계자는 “직원들이 출장 나가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예금을 직접 받는 ‘직금’도 거의 실적이 없다”며 “이곳의 서민 경기는 작년 하반기부터 나빠지기 시작해 지금은 외환위기 때보다 더 나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중순에 발표한 ‘지방금융경제동향’에 따르면 수도권의 예금은행(시중은행, 지방은행, 특수은행 등) 수신 증가액은 올 1·4분기(1∼3월) 11조6000억원으로, 작년 4·4분기(6조4000억원)에 비해 크게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비수도권의 예금은행 수신 증가액은 6조9000억원에서 1조7000억원으로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한은 조사국 임윤상 지역경제팀 과장은 “지방 경제는 제조업 생산 증가세가 둔화되고 소비와 설비투자도 계속 위축되고 있다”며 “1·4분기 중 은행 및 2금융권의 수신 증가세가 모두 크게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울산=정재락기자 raks@donga.com

창원=강정훈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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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인쇄소 전용대출 자영업자 집중공략▼

박미향 대표

적자에 허덕이는 지방 상호저축은행들의 부실 문제가 금융시장의 불안 요소가 되고 있지만 철저한 리스크 분석과 틈새상품 개발로 탄탄한 수익기반을 다지는 저축은행이 있어 업계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부산 플러스상호저축은행이 그 주인공.

올해 6월말 결산에서 70억원 정도의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4년 연속 마이너스 실적에서 벗어나게 된 것. 2001년에는 적자폭이 129억원이나 되기도 했다.

플러스상호저축은행의 이 같은 화려한 변신은 지난해 초 영업부서를 기존 2개에서 5개로 늘리는 등 수신 위주의 조직을 대출 위주의 조직으로 바꾸면서 시작됐다. 경영 전반의 문제점을 점검한 결과 대출이 예금에 비해 너무 적었던 것. 2002년까지만 해도 대출이 예금의 60%에 불과했다.

이후 각 영업부서는 틈새 대출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미용실 전용대출이나 인쇄소 전용 ‘애드론’ 대출 등을 만들어 신용이 있는데도 대출을 받지 못하는 소규모 자영업자들을 발굴했다.

경영기획실은 특정 업종에 대출이 과도하게 이뤄지지 않도록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 여기에 수익원을 다변화시키는 노력도 더해졌다.

작년에 개봉돼 대박이 났던 영화 ‘색즉시공’에 대출 형식으로 3억원을 투자해 1억2000만원의 수익을 올렸다. 조만간 개봉될 정우성 주연의 ‘똥개’에도 3억원을 투자했다.

투자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기법을 모방한 고수익 대출상품을 만들어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부산 지역 건설업자의 자금사정이 안 좋아 건축을 중단한 빌라나 다세대주택이 많다는 점에 착안해 분양권을 담보로 고금리의 긴급자금을 대출한 것. 완공된 뒤에는 원리금을 회수한 후 담보를 풀어줬다.

고교 교사출신으로 2001년 부실화된 이 저축은행을 인수한 박미향 대표(45·사진)는 “외환위기 이후 대출해 간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이 줄줄이 부도나면서 부실이 쌓였지만 틈새를 노린 다양한 대출상품과 리스크 관리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지방금융 회생대책 "지속적 구조조정 틈새시장 공략을"▼

지방 금융회사의 몰락은 외환위기를 계기로 시작됐다. 기업의 갑작스러운 연쇄부도와 개인파산으로 금융회사의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악화되자 정부는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기준으로 부실금융회사의 정리에 나섰다.

지방은행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선발은행에 비해 영업기반이 취약하고 뒤늦게 기업여신 시장에 뛰어들면서 한계기업 위주로 장사를 해 부실화 정도가 더욱 심했다.

결국 동화 경기 대동 동남 충청 등 5개 지방은행은 자산부채(P&A) 양도 방식으로 퇴출됐고 강원 충북은행은 조흥은행에 흡수 합병됐다.

상호신용금고(현 상호저축은행) 새마을금고 신협 등 서민금융회사와 종합금융사 보험사 등은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적어 정부는 회생보다 퇴출시키는 쪽을 선택했다.

이에 따라 지방 금융회사는 급격한 몰락의 길을 걸었고 몇몇 회사만이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 빈자리는 대형 시중은행의 지점이 자리를 잡았다.

또한 지역에서 조성된 자금이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대형은행의 지점으로 몰리면서 지방 금융회사의 영업경쟁력은 갈수록 취약해지고 있다. 이는 지방의 중소기업과 상인에 대한 대출감소로 이어져 지역경제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지방금융의 활로를 구조조정과 틈새시장 확보에서 찾고 있다. 대형 시중은행의 지점과 직접 경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부실한 금융회사는 빨리 퇴출시키고 대형은행의 손길이 닿지 않는 시장을 개척해야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래야만 자금이 골고루 배분되는 효과가 생긴다는 것.

한국은행 전북본부 이수용 과장은 “지역 금융회사는 전반적으로 재무구조가 취약하고 수익성, 경영투명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구조조정을 계속해야 한다”며 “대형화를 통한 비용절감 등은 어려우므로 틈새시장 영업을 강화하는 차별화 전략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또 “인터넷뱅킹이 활성화된 상황에서 지역간 거리장벽은 무의미해 전자금융을 위한 정보기술(IT) 투자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신용평가기능 강화와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박원석 수석연구원은 “기존의 신용평가회사는 상장기업을 주로 분석하므로 지방 중소기업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지방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평가기능 활성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또 지역금융회사가 공동으로 유망한 사업을 발굴해 프로젝트 파이낸싱 형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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