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시대]<7>편안한 노후맞이 전략

  • 입력 2003년 5월 14일 18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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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연금은 노후 설계에 딱 어울리는 상품이다. 젊을 때 매달 얼마씩을 넣으면 은퇴 후 다달이 일정액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에서는 믿고 돈을 맡길 연금 상품이 드물다. 국민연금은 초반에 너무 선심을 많이 쓰는 바람에 신뢰를 잃고 휘청거리고 있다. 기업연금은 이제야 막 도입을 위한 진통을 겪고 있다. 개인연금 상품은 층이 얇고 폭이 좁다. 이런 좋지 않은 여건에서도 슬기롭게 여유로운 노후를 설계하는 방법은 없을까?》

서울 신림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김모씨(46)는 월 평균 순수입으로 360만원가량을 번다. 하지만 국민연금관리공단에는 월 소득을 197만원으로 신고했다. “곧 연금이 바닥난다는데 타지도 못할 곳에 무엇 하러 돈을 많이 넣어요? 대신 20만원짜리 개인연금을 들고 종신보험도 들었으니 훨씬 더 좋은 셈이지요.”

김씨의 노후 설계는 성공적일까?


▽빠듯하다=김씨는 62세부터 국민연금 44만1520원과 개인연금 20만원을 합쳐 다달이 64만여원을 타게 된다. 지난해 4·4분기(10∼12월) 기준으로 55세 이상 근로자가구의 매월 평균 기초생활비는 140만원. 5000만원가량의 예적금과 1억원 상당의 부동산까지 헐어 쓴다면 앞으로 30년간 먹고 사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김씨 부부는 함께 매월 한두 차례 음악회에 가고, 1년에 한 번 종합건강검진을 받고, 매년 해외여행도 하는 품위 있는 노후생활을 꿈꾼다. 그 꿈을 이루기엔 재산이 꽤 모자란다. 가급적 수익성 높은 투자 대안에 목돈을 몰아넣고 불려야 하는 처지다.

▽최고의 상품, 국민연금(?)=이런 면에서 보면 김씨의 허위 소득 신고는 ‘패착(敗着)’이다. 수익률로 치면 국민연금이야말로 최고의 노후대비 상품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투자’의 수익률은 연 8∼12%에 달한다. 은행의 개인연금 신탁상품보다 수익률이 2배가량 높다. 소득이 197만원인 30세 근로자가 30년 동안 다달이 17만7300원을 국민연금에 넣으면 65세부터 매월 평균 62만원(현재가치)을 탄다. 개인연금에 들면 23만원밖에 못 받는다.

‘재테크’의 ‘ㅈ’자도 모른다는 김씨 같은 이들의 노후 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해주려고 나온 게 국민연금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버림 받는 이유=머지않아 판이 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공단에 따르면 이대로 가다가는 2036년부터 국민연금기금에 들어가는 돈보다 나가는 돈이 많아진다. 2047년이면 기금이 바닥을 드러낸다.

“2047년이 가까워지면 연금을 못 받게 될 것”이라는 오해는 여기서 생긴다. 하지만 국민연금은 노후 보장과 소득재분배의 일환으로 시작된 만큼 애초에 낸 돈보다 받는 돈이 많게끔 설계됐다. 수십년 지나면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세계 어느 나라나 공통된 현상이다.

하지만 연금을 주지 않거나 지급을 미룰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국가가 법으로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금이 고갈돼도 연금은 나온다고?=정 다급하면 후손들이 보험료를 많이 내서 모자라는 재원을 채워줄 수 있다. 하지만 자녀세대에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건 차마 못할 짓. 이같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이미 더 내고 덜 받는 ‘재정 현실화’ 작업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가깝게는 이달 하순에 두 번째 국민연금제도 개선안이 나올 예정이다. 월 평균 소득의 15.85%를 내고 50%를 받는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연금공단 김순옥 부연구위원에 따르면 이 경우 30세 근로자의 국민연금 수익률은 5.6%(월 소득 300만원)∼7.8%(월 소득 100만원)로 예상된다. 그는 “국가 재정이 파산하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약속대로 지급될 것이며 수익률도 적어도 앞으로 30∼40년간은 민간연금보다 높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후 대비의 기본은 3층 연금 설계=국민연금이 더 걷고 덜 주는 방향으로 손질돼 가면 노후 보장 수준은 갈수록 낮아진다. 공적연금의 재정 불균형을 해소함과 동시에 국민의 노후보장 수준을 높여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선진국들이 찾아낸 해법은 공적연금을 아주 적게 내고 아주 적게 받는 기초연금제로 탈바꿈시키는 것. 저소득층의 노후 생계를 보장하는 대신 평균소득층의 은퇴 자금 마련을 돕기 위해 기업연금제를 도입한다.

나아가 고소득층을 겨냥한 다양한 개인연금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기초연금-기업연금-개인연금’의 3층 연금구조다. 강남대 김진수 교수에 따르면 스위스 국민은 대체로 공적연금 35%, 기업연금 30%, 민간연금을 포함한 개인적인 자산운용 35%의 비율로 투자 자산을 배분한다. 김 교수는 “공적연금만으로 노후 보장이 가능했던 꿈같은 시절은 지나갔다. 어느 나라나 국가와 기업이 일부만 책임지고 나머지는 개인이 알아서 노후를 설계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퇴직금제도를 보완 또는 대체하는 기업연금제도의 도입을 서두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허장성세의 선심을 쓰는 국민연금과 알아서 챙겨주는 퇴직금에 기댈 수 있는 시대는 갔다. 말 많고 탈 많은 국민연금을 ‘수익률’과 ‘위험’의 냉정한 잣대로 판단해야 하고 지뢰밭 사이로 ‘젖과 꿀이 흐르는’ 주식시장에 퇴직금을 투자해야 하는 시대, 재테크가 부업이 돼야 하는 시대가 다가왔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기업연금 어떻게 운용되나▼

때는 2005년 7월 초.

한국전자 입사 2년차인 홍길동씨(27)는 회사의 기업연금 위탁운용사인 반도투자신탁운용의 김 대리가 내놓은 투자상품안내서를 찬찬히 훑어 내린다. 9개의 추천 펀드 중 홍씨는 ‘반도성장주펀드’와 ‘반도해외시장펀드’를 선택했다. 며칠 전 반도투신운용이 e메일로 보내준 운용보고서를 살펴보니 지난 6개월 동안 투자했던 ‘반도퀄리티채권펀드’와 ‘반도VIP가치주펀드’의 수익률이 형편없어 펀드를 갈아탄 것.

홍씨는 이 해 3월 1일 회사의 기업연금 프로그램에 가입했다. 홍씨는 1∼12% 중에서 선택할 수 있는 보험료 납입률을 4%로 정했다. 회사측은 월 평균 급여 250만원의 4%인 10만원을 다달이 떼서 홍씨 명의의 연금 계좌에 넣는다. 실제 홍씨 계좌에 매월 쌓이는 돈은 15만원이다. 회사측이 종업원 납입액의 50%를 얹어주기 때문이다.

정부가 내년 7월 도입할 예정인 기업연금제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보여주는 가상사례다.

기업연금이 도입돼 근로자가 자기 명의로 연금 계좌를 관리하면 회사가 문을 닫더라도 퇴직금을 건질 수 있다. 근로자는 기업이 도산해도 마지막 3년분 퇴직금은 근로기준법에 따라 최우선으로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퇴직금은 회사 재산을 담보로 잡은 채권자들에게 순위가 밀려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아울러 기업연금 기금이 주식이나 채권에 투자되면 자본시장도 건실해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의 퇴직금제도에서는 대부분 퇴직금 재원이 기업 운영자금으로 쓰이거나 은행 계좌에서 잠자고 있다.

현행 퇴직금제도를 그대로 유지할지 아니면 기업연금제로 바꿀지와 기업연금으로 바꾸더라도 어떤 형태를 선택할지는 기업별 노사협상에 따라 결정된다.

이철용기자 lcy@donga.com

▼개인연금 상품은▼

금융기관별 개인연금 특성
구분은행(농수축협
중앙회포함)
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투신사농수축협
단위조합
수익률실적배당금리연동형
금리확정형
금리연동형
금리확정형
실적배당금리연동형
금리확정형
적립방식자유식정액식정액식자유식정액식
주요 서비스담보/신용대출
거래실적대출
각종 생활보장교통사고 및
상해사고보상
주식/채권형
상호전환
각종 생활보장
연금지급기간확정형확정형 종신형확정형확정형확정형 종신형
중도에
해지할 때
원금 및 일정
이자 지급
일정기간 불입
해야 원금 확보
(최소 5년)
일정기간 불입
해야 원금 확보
(최소 5년)
원금 및 일정
이자 지급
일정기간 불입
해야 원금 확보
(최소 5년)
형태신탁보험보험신탁보험
예금보호 여부보호 보호보호비보호비보호
자료:한국 파이낸셜플래너(FP) 협회

개인연금제도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제도를 보완하기 위해 1994년 도입됐다. 국민연금만으로는 노후 자금을 충분히 마련하기 어려워 개인 스스로 금융기관의 장기 금융상품에 가입해 자금을 마련토록 하고 세제상의 혜택을 준 것.

현재 은행(농수축협 중앙회 포함),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투신운용사, 농수축협 단위조합 등에서 연금신탁, 신개인연금보험, 개인연금펀드 등을 팔고 있다.

▽개인연금 상품 공통점=노후생활자금 준비는 오래 지속적으로 해야 하므로 가입기간은 10년 이상. 납입 한도액은 월 100만원, 한 분기 300만원, 한해 1200만원이다. 18세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고 55세 이후 5년 이상 연금을 지급받는다.

조건을 충족하면 개인당 연 240만원의 납입 금액에 대해 소득공제를 받는다. 대신 연금을 받을 때 10%(주민세 포함 11%)의 연금소득세를 낸다.

그러나 중간에 해지하면 원리금의 20%(주민세 포함 22%)를 기타소득세로 원천징수한다. 5년 이내에 해지하면 원금에서 5%(주민세 포함 5.5%)의 해지가산세를 내야 한다.

원리금 범위 안에서 다른 금융권의 상품으로 바꿀 수 있다.

▽연금신탁=은행이 취급한다.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형과 주식에 투자하는 안정형 두 종류가 있다. 실적 배당형 상품이지만 원금이 보장되며 예금자보호도 받는다.

▽신개인연금보험=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가 취급하는 보험상품. 보험금이 일정한 금리에 연동하는 금리연동형과 금리가 확정된 확정금리형 두 종류가 있다.

연금의 지급형태가 다양하다. 일정 기간 확정적으로 연금을 지급하는 확정연금과 일정 기간은 지급을 보장하면서 살아있는 기간 종신 지급하는 보증지급부 종신연금이 있다. 연금 지급을 체증적으로 설계하는 체증형과 일정액을 지급하는 일정액으로도 나뉜다.

보험의 경우 원금과 함께 이자도 보장된다. 또 보장내용을 특약으로 추가할 수도 있다.

▽연금저축펀드=투신운용사가 운용하는 수익증권. 주식에 투자하는 주식형과 채권에 투자하는 채권형, 국공채형, 혼합형 등 네 종류가 있다. 1년에 두 차례 펀드를 바꿀 수 있다.

투자한 주식이나 채권 값이 오르거나 배당이나 이자를 많이 받으면 다른 상품보다 수익률이 높다. 그러나 예금자보호가 되지 않고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다.

▽투자전략=안정적으로 원금을 보존하고 싶다면 보험에, 다소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수익률을 높이겠다면 은행과 투신의 신탁 상품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신탁상품은 수익률에 따라 연금 지급액이 크게 달라지므로 자신이 가입한 상품의 수익률과 다른 상품의 수익률을 잘 비교해 보아야 한다.

또 보험상품에 가입할 때에는 최저보증이율을 꼭 확인해야 한다.

(도움말:백만기 공인재무설계사 016-233-9872)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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