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상인/바람 잘 날 없는 '파격내각'

  • 입력 2003년 3월 13일 19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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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를 자칭(自稱)하며 새 정부가 출범한 지 이제 겨우 스무날 정도, 하지만 벌써 몇 달 혹은 몇 년은 지난 느낌이다. 그것은 도대체 단 하루도 조용히, 또는 무사히 넘어가는 날이 없었던 까닭이다. 하기야 집권 이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유난히 요란스러웠던 것이 노무현 정부 아니었던가. 물론 그때는 개혁을 위한 준비작업이겠거니 해서 접어주고 이해하고 넘어갔지만 말이다. 그런데 막상 집권 후에도 국민은 긴장의 연속이다. 왜 전쟁 발발도 아니고 경제 위기도 아닌, ‘고작’ 검찰 인사 문제로 일요일 한낮에 온 나라 사람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노심초사해야만 했을까.

▼도덕성 문제점 속속 드러나 ▼

이것만이 아니다. 과연 ‘참여정부’라는 명성에 걸맞게 수많은 네티즌과 시민단체들이 함께 만들다시피 한 초대 내각에도 결코 영일(寧日)이 없어 보인다. 46세의 민변(民辯) 출신 여성 변호사가 법무부 장관이 된 것, 44세의 전직 군수가 행정자치부 장관 자리에 앉은 일 정도야 물론 있을 수 있다. 노 대통령 말마따나 그런 인사를 파격적으로 보는 시각이 도리어 구태에 빠진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개혁을 최대의 가치로 삼고 있는 노무현 정부에서 일부 각료의 도덕성과 윤리성에 관련된 하자가 연일, 그리고 속속 드러나고 있다면 이는 결코 상서로운 징조가 아니다. ‘파격 내각’의 신선도가 너무나 빠르게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면서도 주민등록을 15년 가까이 만들지 않은 채 미국 영주권자 신분으로 살아왔던 진대제 정보통신부 장관의 경우는 장남의 병역기피 의혹도 매우 짙은 상태이다. ‘리틀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가진 김두관 행자부 장관은 1995년 남해군수 선거 때 상대 후보를 비방하기 위해 자신이 경영하는 남해신문을 이용한 혐의가 드러났으며 당선 이후에도 8개월 동안이나 신문사 대표직을 서류상 보유함으로써 공무원의 겸직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한다. 특히 보도에 따르면 군내 유일의 지역신문인 남해신문은 1994년 남해군에서 군정홍보료 명목으로 1000만원을 받았으며 김 군수 취임 이후 남해신문에 남해군 관련 광고가 대폭 늘어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권언(權言)유착’ 사례가 아니고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김 장관을 ‘지방자치의 오리지널’이라고 칭찬한 것이 돌연 민망해지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신임 김진표 경제부총리가 이른바 ‘SK그룹 수사 외압설’의 한 주역으로 드러난 것도 노무현 정부가 그토록 강조하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 의지와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사정이 좀 다르긴 하지만 취임 일성에서 결코 “뺑뺑이 돌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윤덕홍 교육부총리가 잇단 경솔한 판단을 통해 국민을 ‘뺑뺑이 돌리고’ 있는 것도 새 정부에 대한 기대와 믿음을 반감시키고 있다.

그런데 정작 이해하지 못할 것은 해당 장관들에 대한 임명권자의 확고한 신임이다. 진 장관에게는 ‘악의가 없다’는 이유로 면죄부가 주어졌고 김 부총리의 행위는 ‘정당한 협조요청’으로 평가되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정부는 자신에 대한 여하한 비판도 기득권 세력의 무조건적 발목잡기와 메이저 신문들의 일방적 흠집내기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처럼 여론의 동향에 합리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감정적으로 반발하는 자세는 운동권식 특권주의와 386식 선민(選民)사상의 표출로밖에 이해될 수 없다.

▼운동권식 특권주의 버려야 ▼

지금 노무현 참여정부는 자신의 개혁과제에 주관적으로 도취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그 결과 소수정권이라면 마땅히 취해야 할 개방성과 유연성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노무현식 개혁’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각료 가운데 옥석은 빨리 구분해야 한다. 독일 속담에 ‘한번 망치를 들면 다 못으로 보인다’고 했다. 하지만 망치를 들었다고 해서 모두 다 좋은 목수는 아니다.

전상인 한림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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