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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3월 6일 20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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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절한 시기 의혹만 증폭▼
물론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모든 접촉이 공개적으로 추진될 수 없다는 점은 일면 이해할 수 있다. 더욱이 정부가 심각한 핵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대북접촉을 시도할 경우 생산적이라는 전제만 성립된다면, 그것이 설사 비공개적 만남이라도 국민이 수용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특히 핵을 둘러싼 북-미간의 수사(修辭)와 행동이 거칠어지고 있는 시점에서 한국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 배제되지 않기 위해 남북 대화채널을 유지하려는 것에 왈가왈부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밀접촉이 정상회담 성사를 위한 탐색단계의 거래였다면 여러 문제점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 지금은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하기보다는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차원의 종합대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 사실 미국은 지난해 말부터 DJ정부와 핵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채널을 가동하지 않고 새 정부가 출범하기만 기다려왔다. 이제 내각이 구성된 만큼 본격적으로 한미간 문제해결을 위한 진지한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노무현 대통령의 5월 방미 전까지 새로운 한미협력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참여정부가 밝힌 대북정책의 투명성 확보 여부 문제다. 물론 보직 임명 전이지만 대북정책을 총괄할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북측과 접촉했다는 사실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단지 이러한 만남이 알려진 뒤에도 세부적인 정황을 공개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함으로써 세간의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정부의 투명성 확보 방침이 남북관계의 속성상 사전적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사후적으로도 실천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대북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은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셋째, 대북접촉의 목적이 명확하지 않다. 북한은 핵문제 해결의 당사자로 시종일관 한국이 아닌 미국을 지목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핵문제는 북미간의 문제라며 한국이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이는 이미 1월 특사외교에서 입증된 바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에서는 설령 정상회담이 성사된다고 해도 단순 만남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이번 접촉은 정부의 정상회담 조급증을 노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역대 우리 지도자들은 대통령에 당선된 순간부터 정상회담에 매달렸다. 지도자는 포용력과 인간적 매력으로 북측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세계 역사는 정상회담은 최종적인 담판의 장소이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푸는 자리가 아니라는 교훈을 제공한다.
노 대통령은 임기 중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남북정상간의 만남에 대한 유혹을 받을 것이다. 특히 지금처럼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경우는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고뇌에 찬 결단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반면 긴장이 해소될 시점에서는 통일의 초석을 마련한다는 당위성에 집착해 북측의 지도자를 만나려는 의욕을 보일 수 있다. 때로는 참모들로부터 솔깃한 제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의 시기와 목적, 성사조건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하지 않고 행동이 앞설 경우 과거 남북지도자간 담판에서 나타났던 실망이 재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정상회담 조급증 노출 결과만▼
정부는 이번 논란을 계기로 앞으로 대북정책 추진절차와 방법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마련하고 초당적 협력을 구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국민참여라는 통치기조가 실제 대북정책에서도 구현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의 대북 관련 어록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성욱 고려대 교수·북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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