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밝히면 망한다’는 게 밝힐 이유다

  • 입력 2003년 2월 6일 18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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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용(趙淳容) 대통령정무수석은 “(대북 비밀)송금 내역을 다 까면 현대가 망하고, 남북관계가 훼손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청와대가 나서서 밝힐 수도 없고, 야당이 요구하는 특검제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런 이유라면 더더욱 대북 비밀송금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본다.

송금 내역을 밝히면 현대가 망한다는 말은 현 정권의 비호를 받은 현대가 그동안 대북거래에 있어 온갖 불법 탈법 행위를 저질러왔다는 게 아닌가. 또 이 말을 뒤집어보면 현대를 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불법 탈법이 계속 묵과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된다.

누구도 납득하기 어려운 궤변이다. 그런데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반(反)국가단체인 북을 상대하는 일은 초법적인 것”이라며 억지논리를 합리화한다. 현대가 한 일은 초법적인 만큼 진상을 더 이상 알려고 할 필요도 없고, 캐려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명분은 ‘국익을 위해서’다. 그러나 현대 계열사들이 줄줄이 북에 엄청난 돈을 몰래 보낸 의혹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터에 그걸 덮는 것이 국익이라고 믿을 국민은 없을 것이다.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것 또한 대북 비밀송금의 진상을 감추려는 의도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물론 현행법상 북한은 반국가단체다. 그러나 이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한번도 북한을 반국가단체로 부른 적이 없다. 오히려 남북간의 ‘특수관계’를 앞세워 실정법의 규정을 사실상 사문화(死文化)했다. 법 논리를 떠나 햇볕정책에는 ‘특수관계’를 적용하고 비밀송금 의혹에는 ‘반국가단체’를 들이대는 것은 ‘통치행위’의 일관성에마저 어긋나는 일이다.

다시 한번 촉구한다. 김 대통령은 대북 비밀송금의 진상을 국민 앞에 솔직히 털어놓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금의 왜곡된 남북관계를 정상화해 진정한 남북협력의 새 질서를 만들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국익을 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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