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덤핑 수주" VS "예산 절감"

  • 입력 2003년 2월 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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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6일 충남 논산시에 본사를 둔 충일건설이 최종 부도처리됐다. 이 회사는 2000년에 매출 1300억원, 당기순이익 31억원을 냈다. 충남지역 2위 업체였다.

부도가 난 가장 큰 이유로 무리한 덤핑 수주가 꼽혔다. 그해 3월 수주했던 인천 송도신도시 기반시설공사와 4월 강원도 도로공사가 화근이었다. 조달청이 제시했던 금액의 60% 이하에서 공사를 땄다.

너무 싼값에 공사를 하다 보니 부도를 피할 수 없었다. 이 회사가 부도난 뒤 이들 현장은 물론 다른 사업장의 공기(工期)도 지연됐다.

충일건설이 덤핑 수주를 감행했던 건 ‘최저가 낙찰제’ 때문. 이는 정부가 1000억원이 넘는 공공공사를 발주할 때 가장 낮은 공사비를 써낸 회사에 시공권을 주는 제도다. 2001년부터 도입됐다.

액면대로라면 시장원리에 딱 들어맞는다. 원가를 줄일 수 있는 우량한 건설회사만 살아남는다. 국가 예산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무조건 따놓고 보자’는 식의 덤핑 수주가 남발했다. 공사를 따놓고 곧바로 부도나는 회사도 생겼다. ‘정상적인’ 건설회사들이 되레 경쟁에서 밀린다는 원성이 높다.

더구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올해부터 최저가 낙찰제 실시 대상을 500억원 이상 공사로 확대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시민단체들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시장원리를 존중할 것인지, 현실을 감안할 것인지가 지금 도마에 올랐다.

▽“최저가는 덤핑가격”(반대론)=98년 공공공사 평균 낙찰률은 80.6%. 최저가 낙찰제가 도입된 2001년에는 64.5%, 작년에는 64.2%로 낙찰률이 떨어졌다.

정부가 공사비를 1000억원으로 예상했다면 건설회사들은 실제 640억원만 받고 시공을 한 셈이다. 통상 건설업계에서는 예정가격의 70% 이하에서 공사를 따면 덤핑 수주로 본다.

이정구(李禎久) 대우건설 영업담당 사장은 “모든 공사에는 현실적으로 실행이 가능한 공사비가 있기 마련”이라며 “정부도 이를 감안해 예정가격을 제시하는 만큼 턱없이 낮은 값에 공사를 따면 부실시공이나 업체의 경영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고도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업도 최저가 낙찰제 적용 대상에 해당돼 자칫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하지만 건설회사들은 저가에 공사를 따더라도 일단 매출이 발생해 현금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최저가 낙찰제 대상 공사가 전체 공공공사의 15%에 달해 덤핑의 유혹을 물리치기 힘들다. 공사 규모가 1000억원 이상 대형이라는 점도 건설회사들을 저가수주로 몰고 가는 요인이다.

▽“예산 절약하는 대안”(찬성론)=그러나 시민단체는 최저가 낙찰제가 “건설회사 사이의 담합을 방지하고 국민의 세금을 절약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동안 정부가 연간 40조원 규모의 막대한 재원을 건설사업에 투자하면서도 비효율적이고 방만한 사업추진으로 예산을 낭비했다는 것.

실제로 경실련은 2001년부터 2년간 70여건의 공공공사에 최저가 낙찰제를 도입한 결과 약 3조1000억원의 예산을 절감했다고 추산한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간 건설회사들이 다소 과도한 이익을 취했다는 것.

부실공사에 대한 우려도 ‘기우(杞憂)’라고 일축한다. 김헌동 경실련 연구위원은 “최근 2년간 실시한 최저가 낙찰제 대상 공사의 낙찰률이 60∼70%에 집중된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정도 가격에도 공사를 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건설회사들이 낮은 공사비를 써냈다는 설명이다.

▽좁혀지지 않는 평행선〓건설회사와 시민단체, 각 정부기관의 입장이 엇갈리는 만큼 이들이 내놓는 대안도 제각각이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최저가 낙찰제의 틀을 유지하되 실제로 시공 능력이 있는 회사만 공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변별력을 강화하고 덤핑 입찰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건설기술 발전을 위해 공정이 복잡한 복합공사나 대형공사에 대해서는 턴키 공사를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턴키 공사는 건설회사가 직접 설계에서부터 시공까지 하는 방식.

반면 시민단체는 최저가 낙찰제 대상을 1000억원 미만 공사에도 확대해 건설산업의 체질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헌동 연구위원은 “터무니없이 싼 입찰가를 제시하는 것에 대비해 보증 및 보험 요건을 강화하면 덤핑 입찰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재정경제부는 ‘혼합형 최저가 낙찰제’를 대안으로 내세운다. 최저가 낙찰제를 기본으로 하되 최저가의 가격 적정성을 정부기관이 심사하는 ‘저가심의제’를 추가한다는 것.

건설교통부와 조달청도 각각 독자적인 ‘저가 심의 방안’을 마련해 최근 재경부에 제출했다. 관련 경제부처 협의를 거쳐 올해 안에 국가계약법 시행령이 개정될 전망이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차지완기자 marud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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