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車 … 개 … 아파트 … "경품받아 가세요"

  • 입력 2003년 2월 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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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2월. 조미료시장의 양대 산맥이던 미원(현 대상)과 제일제당(현 CJ)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경품(景品)경쟁을 벌였다. 제일제당은 시가 3000원 상당의 스웨터를 경품으로 내걸었고 미원은 인기여배우 김지미를 광고모델로 내세워 순금 1돈쭝짜리 반지를 걸고 반격에 나섰다.

경품값은 비슷했지만 결과는 미원의 승리. 순금반지가 주부들에게 스웨터보다 고급스럽게 비쳤던 것.

그로부터 33년이 지난 지금. 서구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경품은 기업 마케팅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전략수단이 됐다. 경품의 종류와 이벤트 방법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다. 그러나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노리는 경품의 경제학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경품은 시대를 반영한다〓1936년 동아일보에는 ‘1원어치를 사면 황소를 준다’는 화신연쇄점 경품광고가 실렸다. 1970년대까지 바가지, 접시 등 생활용품이 경품으로 자주 등장했다. 김장철에는 고무장갑이 ‘단골 메뉴’. 1990년대에는 해외여행상품권이나 여행용 가방 등이 경품으로 나왔다. 외환위기 때는 부엌개조 등 살림에 보탬이 되는 경품이 인기를 끌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건강진단권, 성형수술권, 주식 등 이색경품부터 아파트, 수입자동차, 다이아몬드, 수입명품 등 고가의 경품까지 쏟아져 나왔다.

신세계백화점 장혜진 과장은 “경품으로 다양한 상품을 고를 수 있는 상품권을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다”며 “3만원 이상 상품권은 비슷한 가격의 다른 경품보다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경품도 어엿한 산업〓국내 경품시장 규모는 500억∼600억원대. 경품광고 대행업체 찬스잇(www.chanceit.co.kr)에 따르면 지난해 하루 평균 37건의 경품 이벤트가 벌어져 2001년(32건)에 비해 15% 정도 늘었다.

경품광고를 기획하거나 경품 배송을 대행해주는 경품광고 대행업체나 경품정보 제공 사이트들도 성업 중이다. 찬스잇 등 5개 경품제공 사이트들은 매일 경품 이벤트 정보를 제공하고 경품 당첨확률 등을 공개한다. 경품 당첨비법 등을 서로 공유하고 경품이벤트만 골라 전문적으로 응모하는 경품족(族)이 이들 사이트에서 활동하고 있다.

찬스잇 김억(金億) 기획팀장은 “경품광고 대행수수료로 경품 액수의 10% 정도를 받는다”며 “경품정보 제공 사이트 회원이 70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경품의 경제적 가치〓경품은 고객을 모으고 매출을 높이는 데 ‘특효약’. 이 밖에 잠재고객을 자극하거나 고객관계관리(CRM) 용도의 고객정보 등을 모으는 효과를 낸다. 2001년 신세계백화점이 자사카드 소지자를 대상으로 연 경품행사 결과 한번도 카드를 쓰지 않았던 잠재고객 15%가 매장을 방문했고 이들 가운데 40%가 물건을 샀다.

지난해 9월 인터넷포털사이트 롯데타운(www.lottetown.com)은 48평형 아파트 등 5억원 상당의 경품을 내걸어 신규회원 120만명을 모았다. 신용카드회원 1명 모집에 1만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100억원 정도의 홍보와 회원모집 효과를 낸 것으로 롯데타운측은 분석했다.

고가 명품이나 문화공연 티켓 경품은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효과를 낸다. 패밀리레스토랑 베니건스는 1월 뮤지컬 ‘캣츠’ 1회 공연의 모든 좌석(2000석)을 사들여 경품으로 내걸었다.

▽경품이 흥행의 보증수표는 아니다〓국내 한 백화점은 전열기를 경품으로 내걸었다가 전열기 관련 사고가 잇달아 터지면서 낭패를 겪었다. 지난해 한 외식업체는 미국여행권을 경품으로 내걸었다가 발리, 필리핀 폭탄테러가 터져 곤욕을 치렀다. 한 인터넷업체는 유료 회원을 가입해야 하는 등 까다로운 조건을 걸고 경품행사를 열었다가 하루 평균 7명이 방문할 정도로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고가의 경품을 내건다고 해서 ‘대박’이 터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롯데타운 경품행사에서 고객선호도가 높은 경품 4개 가운데 2위부터 4위는 제시된 경품 중 값이 싼 소니 디지털 캠코더, 삼성 지펠 냉장고 등이었다.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내라〓물건 판매를 전제로 한 경품은 상품구입액의 10%를 넘지 않아야 하는 등 경품 규제가 엄격해져 업체들의 머리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인터넷 열기가 한창일 무렵인 2000년 신세계 백화점은 1박2일의 ‘주부인터넷 교육’을 경품으로 내걸어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매출이 10% 정도 늘어나는 성공을 거뒀다.

2001년 9월 한 보험회사는 TV프로그램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던 썰매 개 ‘시베리안 허스키’ 3마리 등 500만원 상당의 경품으로 4만5000명의 신규회원을 모아 7000만원 정도의 효과를 냈다.

서울대 경영대 주우진(朱尤進·마케팅) 교수는 “경품은 ‘확장된 상품(extended product)’ 가운데 하나”라며 “구매 체험에 재미를 주는 오락적인 요소와 또 다른 확장된 상품인 애프터서비스, 소비자 금융 등이 더해질 때 최대의 효과를 낸다”고 말했다. 경품은 이제 생활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박 용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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