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 내셔널 어젠다委 제안]<16>외자유치

  • 입력 2003년 1월 28일 19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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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세계 각국의 해외투자 유치 잠재력과 실제 성취도를 분석했다. 한국은 멕시코 그리스 등과 더불어 잠재력은 높되 성과는 낮은 나라로 분류됐다.

20세기 후반 한국의 고도성장의 가장 큰 요인은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통한 해외 수출과 선진기술의 도입이었다. 이제 21세기에 한국이 재도약하느냐 여부는 한국이 얼마나 많은 첨단기술과 고급 인력의 터전이 되느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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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투자유치 정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차기 정부에 제안한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의 해외자본 유치는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1차적인 목표였다. 따라서 주로 한국 기업의 매각을 통해 자본을 유치하는 데 치중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01년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FDI) 자금의 69%가 기업 인수합병을 통한 투자였다. 회사를 새로 설립하거나 신규로 공장을 짓는 투자와 달리 경제성장이나 고용촉진 효과는 크지 않았다.

새 정부에서는 단순한 국내 자산 매각보다는 한국에 신규로 투자하는 외국 기업들, 특히 기술 집약적 분야의 세계적인 유수 기업을 한국으로 유치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외국인 투자 유치를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아일랜드의 투자개발청(IDA)은 지난 10년간 단순한 외자 유치가 아니라 경제발전의 전략으로서 외국 기업과 아일랜드 기업 간 연계를 강화했다. 그 결과 아일랜드의 소프트웨어 산업은 세계 1위의 수출산업으로 발전했다.


다국적 기업의 유치를 국내 산업의 고도화 전략과 연계하는 종합적인 청사진이 필요하다. 생명공학 정보통신 등 하이테크 산업의 연구개발센터를 적극적으로 유치하자. 고도기술 분야에서 외국 기업이 국내 인력을 훈련하고 기술을 이전하는 경우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사양산업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투자 유치의 대상을 선정하는 아일랜드와 첨단기술 이전을 투자요건으로 내거는 중국 등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외국 기업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경쟁국보다 낫게 만들어야 한다. 2001년 한 해 중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투자는 468억달러, 홍콩 228억달러였다. 한국은 118억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중국 상하이(上海)의 푸둥(浦東)지구만 해도 5000개가 넘는 외국 기업이 300억달러 이상 투자하고 있다. 스위스 국제경영대학원(IMD)의 평가에 따르면 2002년 내국, 외국인 기업간의 공평한 대우 면에서 한국은 세계 45위로 홍콩(9위), 싱가포르(12위), 중국(36위)에 뒤져 있다. 한국이 경쟁국보다 아직은 우수한 인력의 장점을 갖고 있다고 하나 중국이 값싼 고급 인력을 계속 양성해 가면 이런 이점은 곧 사라질 것이다.

한국 전체를 매력적인 경제특구로 만들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경제자유구역(특구)법의 제정으로 인천 부산 광양지역의 특구 지정이 가능하지만, 이것으로 중국 홍콩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 향하는 외국 기업들의 발길을 얼마나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법인세 감면, 규제 완화, 노사관계 안정 등에서 더욱 적극적인 유인 정책이 필요하다. 외국 기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하려면 우수한 해외 인력이 들어오고 싶게 만들어야 한다. 외국인들이 한국으로 발령받으면 위로를 받는 상황에선 경쟁이 되지 않는다.

경제특구 내에선 행정기관이 영어 서비스를 하고 외국인에 대한 의료 교육 주택 지원을 강화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개선될지 외국계 기업들에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있다. 우선 일부 관광특구부터라도 영어와 외국 통화를 공용화하는 가시적인 조치를 취하자. 미국 버클리 대학 로즈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두 국가가 단일 통화를 사용할 때 무역은 평균 2배 이상 증가한다.

한국의 이민법이나 출입국관리법 등은 외국인, 심지어 한국의 해외동포에 대해서도 배타적이다. 우수한 해외 인력이 한국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고치고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는 외국인들은 영주권을 확대하는 등의 방법으로 내국인과 같은 조건에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종화 고려대 교수·경제학

▼외국인 발목잡는 코리아▼

“범죄자 취급 받는 것 같아요.”

한국계 미국인으로 모 다국적 기업의 서울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L씨. 1년 전만 해도 L씨의 외국인등록증으로는 전자상거래도 인터넷 회원 가입도 할 수 없었고, 휴대전화조차 본인 명의로 마련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등록번호로는 실명 확인 등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상반기,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한 새로운 외국인등록번호 부여 체계가 마련됐지만 아직 인터넷 업체에선 외국인 실명 확인 소프트웨어 등을 설치한 곳이 많지 않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L씨는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한국어 사이트들은 대부분 회원가입시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기 때문에 정보검색이 필요할 때는 동료 직원의 아이디를 ‘얻어’ 써야 한다.

외국인들은 살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주택을 구해 주는 상담사 중에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사람이 별로 없어 몇몇 에이전트에 의지하다 보니 시세보다 비싼 주택 임대료를 물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한 외국계 투자은행의 미국인 임원은 한국으로 가족을 데리고 오는 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가장 문제가 됐던 것은 자녀들의 학교 문제. 외국기업들이 한국 기업을 인수하거나 새로 투자를 하려고 해도 장기간 서울에 거주하려는 임원급 희망자가 없어 계획을 접기도 한다.

다국적 기업은 사무실을 구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다고 호소한다. 다국적 기업은 자사가 입주할 건물의 사양을 정해 둔 경우가 많다. 층고, 하중, 전기 용량, 보안 등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아야 하지만 이런 조건을 다 충족시키는 건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오피스 빌딩 등급 제도’ 등으로 이를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설계 자재 위치 접근성 임대료 등의 객관적인 정보에 따라 건물을 분류해 임차하고자 하는 사람이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건설교통부는 우선 11층 이상 건물을 대상으로 올해 4월 이후 이 제도를 도입할 것을 검토 중이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투자 발길끄는 아일랜드▼

아일랜드는 20년 전만 해도 감자농사 외에는 내세울 만한 산업이 없었고 지리적으로도 유럽의 한쪽에 치우쳐 외국기업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도 없는 나라였다. 고등교육을 받은 인구의 70%가량이 해외로 나가기를 원할 정도였다.

그런 아일랜드에 지금은 1300여개의 외국 기업이 들어와 14만명의 아일랜드인을 고용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이 약 3만달러(2001년 기준)에 이른다. 아일랜드를 이렇게 바꾼 것은 성공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였다.

투자 유치를 전담하는 아일랜드투자개발청(IDB)은 정부기관이지만 직원들은 성과 베이스로 보수를 받는다. IDB의 책임자는 주로 민간 기업 최고경영자 출신이 맡는다. 서비스 마인드로 무장한 IDB 덕에 아일랜드에서 회사를 설립하는 데 필요한 기간은 한 달을 넘지 않는다. IDB 직원은 외국기업의 경영진이 살 집에서부터 자녀들의 학교 문제까지 일일이 상담해 준다.

전력 등 기본적인 운영비가 싸고 법인세는 유럽 최저 수준인 데다 공장이나 지사 설립 등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아일랜드 정부가 대출해 주기도 한다.

그러나 외자 유치는 철저히 고부가가치 산업에 국한된다. 낡은 생산라인을 옮겨 오는 식은 허용되지 않는다. 유치의 타깃이 되는 산업군은 전자, 제약 의학, 금융, 정보기술 소프트웨어 등이다. 산업의 종류뿐 아니라 적절한 영역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아일랜드엔 카드업체 렌터카업체 은행 등의 백업 센터와 콜 센터가 밀집해 있다.

외국 기업을 유치할 때는 해당 기업의 향후 인력 수요까지 파악해 인력 수급 계획을 세운다. 아일랜드 대학 졸업생의 57%는 공학 과학 경영학 등을 전공한다.

컨설팅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의 런던사무소 제럴드 멀빈 파트너는 “이제는 고등교육을 받고 해외에서 몇 년간 고도의 경력을 쌓은 아일랜드인들이 조국으로 돌아가는 분위기”라며 고급 인력을 투자 유치의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투자 유인책으로 조세를 낮췄기 때문에 정부 재정 수입이 넉넉하지 않아 인프라나 사회보장 등에 투입할 재원이 충분치 않다는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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