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인수위 앞으로 5년, 60일에 달렸다 4]청와대 업무분장

  • 입력 2003년 1월 24일 19시 31분


코멘트
▼비서실 조직개편 이렇게▼

대통령의 임기 5년은 선거 과정에서 밝힌 공약을 성공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다. 공약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정권 인수 단계에서 정책우선순위를 정하고, 의도하는 국정운영 방향에 따라 새 정부의 조직을 정비하며, 그에 맞는 인선작업까지 완료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이런 과정을 끝낸 뒤 대통령 취임 전에 새로운 인물과 조직을 갖고 정책을 집행하는 도상연습까지 해보는 것이 좋다. 대통령당선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취임과 동시에 곧바로 정책집행에 들어갈 수 있으며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국정운영을 보좌하는 중추기관인 대통령비서실의 재정비다. 역대 대통령의 비서실은 권부(權府)의 상징으로 군림하면서, 장기독재 정경유착 친인척비리 등 온갖 부정의 온상으로 인식돼온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대통령비서실이 정책을 효율적으로 밀고 나가는 국가 경영관리집단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조직을 재편해야 한다. 비서실을 축소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국가 경영에 필요하다면 조직과 인원을 과감히 보강할 수도 있어야 한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는 절대다수의 지지로 당선하지 못한데다 야당인 한나라당이 원내 과반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책을 추진해야 하는 어려운 입장이다. 국민이 신뢰하는 청와대를 만들어야만 원활한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

노 당선자는 비서실장에게 정무기능을 맡기고, 본인 스스로 야당과 수시로 대화를 나누겠다고 밝힌 바 있다. 원내 소수파인 정부가 국정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현실적 제약을 수용한 것이다. 실제 노 당선자는 22일 한나라당을 방문, 서청원(徐淸源) 대표를 만나 대화와 협력으로 국정운영을 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노 당선자의 이런 구상을 보좌하기 위해서는 대통령비서실의 정무기능을 보강해야 한다. 정무 부문에 각각 여당과 야당을 담당하는 중진급 보좌진을 별도로 둬야 한다. 가능하다면 아예 정무수석비서관을 두 명 두고 여야를 분담해 맡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미국의 백악관은 정무부문을 그런 식으로 해서 역할분담을 하고 있다.

이처럼 야당과의 접촉을 상설화하는 것을 전제로 한 비서실은 긴급 상황이 발생할 때 큰 성과를 발휘할 수 있다. 민주당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탄핵안이 제출됐을 때 이에 찬성하는 공화당 소속 상원의원을 설득하는 데 비서실 내 야당 담당자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과거 우리 대통령들은 정부 정책을 입법화하기 위해 여당을 동원해 힘으로 밀어붙인 적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파행을 거듭했고, 여야의 정쟁이 일상화됐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이 여야의 국회의원들을 직접 접촉해 자신의 견해를 설득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책을 집행해 나가는 과정에서 대통령비서실과 내각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지의 문제도 인수위가 고민해야 할 과제다. 대통령비서실이 내각에 대해 모든 정책을 지시 감독하는 과거 방식으로는 국정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통령비서실의 정책팀은 대통령의 정책의지를 잘 이해하는 인사들로 충원하되, 큰 방향에서 내각의 정책집행이 대통령의 정책방향과 일치하도록 조정해나가는 역할을 하도록 정비해야 한다.

정보수석비서관을 신설해 정보 총괄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안도 검토해 볼 만하다. 독일 총리실의 경우 정보수석비서관은 각 기관으로부터 해외첩보, 군사정보, 경찰정보, 정당 및 정치정세 등을 제공받아 이를 종합 분석해 총리에게 보고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정규 부처로 통합정보부를 신설하는 방안에 대해 입법검토 단계에 들어갔다.

대통령은 넓고 균형된 정보를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상황, 북한 문제에 신속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보를 총괄하는 비서관이 반드시 필요하다. 아울러 비서실에는 국내와 국외 담당 특별보좌관 또는 고문을 약간 명 두는 것이 좋다.

행정부처가 결정한 정책을 최종단계에서 검증하고, 대통령에게 자문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별보좌관 등은 정책수행의 흠결을 극소화하고, 부작용을 예측해 예방하는 임무를 갖는다.

국가안보회의(NSC)도 역할 조정이 필요하다. 현재 NSC는 현안 대처나 일상업무 등 단순 기능만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앞으로는 장기적인 안보정책을 구상하고, 실질적인 정책대안을 도출하면서 위기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구로 바꿔야 한다.

최평길 연세대교수·행정학


▼보좌진 개인플레이 막으려면▼

비서실장을 포함한 대통령 보좌진은 기본적으로 대통령과 운명을 같이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으면서 정책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비한 인물이어야 한다. 특히 비서실장은 여기에 더해 ‘공정한 중재자’로서 자질도 갖춰야 한다.

비서실은 대통령의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내각과 국회, 이익집단 등 각 부문간의 상충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설득하는 중심 역할을 하게 된다.

정책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중재자인 비서실장은 대통령을 입법부와 행정부, 나아가 국민과 연결시켜 주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에서 보듯, 비서실장의 역할이 두드러지면 정치권과 국민의 비판을 받기 쉽다. 이는 비서실 조직 전체의 안정성을 해치는 결과로 이어진다. 소통령, 부통령으로까지 불렸던 이전의 몇몇 비서실장은 대통령과 청와대 전반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초래하는 결과를 빚었다.

비서실장과 보좌진은 대통령의 정책 의지가 아닌, 자신들의 의지를 정책에 반영하려 해서는 안된다. 대통령 비서실이 개인플레이를 할 경우,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힘들고, 내각 및 국회와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사례들이 쌓이면 결국은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게 된다.

대통령당선자는 정권 인수단계에서 비서실장의 역할에 대해 확실한 지침을 줄 필요가 있다. 대통령이 직접 챙길 사안과 비서실장에게 위임할 사안은 물론이고 각 수석비서관과의 관계 설정 등을 명확히 해줘야 보좌기능이 원활하게 돌아간다.

비서실장이 해야 할 일이 워낙 광범위하다 보니 대통령에 따라서는 비서실을 실장 1인체제로 운영하지 않고 몇 사람에게 실장의 권한을 분산시키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각자의 역할을 분명하게 구분해줘야 갈등과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박석희 미국 버지니아대 박사과정·대통령학

▼국민여론 수렴기능 높이려면▼

대통령은 청와대에 들어가면 정해진 일정에 따라 선택된 인물만을 접견하게 된다.

비서실장 수석비서관 국무총리 여당대표 그리고 국정원장 등이 대통령이 만나는 주요 인물들이다.

그 밖의 사람들은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지극히 제한된다. 일선의 정책 집행 책임자인 각 부처 장관들도 대통령과 정책에 대해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누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일반의 여론, 즉 민심에서 멀어지게 된다. 그 결과 제왕적 대통령, 독선적 정책결정이 나오게 된다. 내각제 아래의 행정수반인 국무총리는 주말이면 자신의 지역구에 내려가 구멍가게 주인도 만나보고, 세탁소 아줌마도 만나면서 바닥 민심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을 군왕처럼 생각하는 전통적 사고방식과 1·21사태 이후 요새화된 청와대의 경호시스템으로 인해 보통사람이 대통령에게 접근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차단돼 있다.

이제는 과거의 그런 경직된 청와대 구조를 바꿀 때가 됐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인수위원회는 대통령과 청와대를 국민 앞에 개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강구해 취임 직후부터 시행해야 한다.

노 당선자 스스로가 과거 야당시절과 인권변호사 때처럼 틈나는 대로 국민 속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청와대 본관에 하위직을 포함해 가능한 한 많은 보좌진이 입주할 수 있도록 해서 대통령과 보좌진이 직접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대통령은 여론 체감도를 높일 수 있다.

청와대의 보좌진으로 하여금 사회단체 일반전문가 보통서민 등이 참여하는 비공식 위원회를 만들어 그들의 의견을 수시로 수렴하고, 필요하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방안도 시도해 볼 만하다. 청와대 인터넷 홈페이지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대통령이 언제라도 온라인상에서 여론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물론 필요하다.

최평길 연세대교수·행정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