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의 농구에세이]이젠 용병들이 변해야 할때

  • 입력 2003년 1월 20일 1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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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에서 쓴 물이 넘어오는 것 같아요”.

그것이 위액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프로농구 감독들은 한 시즌이 지나면 어김없이 위장병에 시달린다. 주머니에 약을 한 웅큼씩 넣고 다니면서 시도 때도 없이 입에 털어넣는 감독도 있다. 무엇이 그들을 이토록 속쓰리게 하는 걸까.

지난 일요일 동양과 TG전은 당일 승패보다는 오히려 플레이오프에서 만날 것에 대비한 기선 제압을 위한 일전의 의미가 컸다.

1쿼터는 동양의 페이스로 시작됐다. 특유의 빠른 속공으로 마르커스 힉스와 토시로 저머니가 순식간에 8득점을 하며 기세를 올렸다. 그러나 이 기분 좋은 출발은 힉스의 돌출행동으로 이내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말았다.

힉스가 연달아 불만섞인 제스추어를 하는 동안 TG는 착실히 득점하면서 추격했다. 농구는 팀워크의 경기다. 한 선수의 돌출행동은 다른 4명의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힉스는 경기 내내 혼자서 떠들어댔다. 대신 동양의 다른 선수들은 입을 다문 채 표정없이 뛰어야 했다. 선수들간의 호흡이 맞지않는데 경기가 제대로 풀릴 리 만무. 결국 동양은 단 69득점, 올 시즌 최소득점의 부끄러운 기록으로 패배를 맞아야 했다. 이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 했던 동양 김진 감독의 속은 얼마나 탔을까.

요즘 각 팀 감독들의 큰 짐 중에 하나는 개성이 강한 용병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다루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의 컨디션과 기분이 승패에 중요한 변수가 되기 때문이다.

프로농구 초창기 감독은 속앓이만 할 뿐 용병을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했다. 그러나 출범 6년이 지난 지금 감독들은 용병선수가 불성실하게 경기를 했다고 판단되면 “Go home!”을 거침없이 외친다. 한국 농구가 그만큼 성장했고 또한 용병들에겐 한국프로농구가 놓치고 싶지 않은 매력적인 일터가 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요즘 TG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데릭 존슨. 4년 전 국내 프로농구에서 뛸 당시 그는 ‘악동’ 그 자체였다. 그의 유명한 일화 중 하나. 잠실 경기에서 존슨의 불성실한 플레이에 화가 난 감독이 그를 벤치로 불러들여 “짐 싸가지고 가!” 하고 소리쳤다. 평소에 말을 잘 안 듣던 그는 웬 일인지 정말 짐을 싸서 벤치를 떠나려했다. 황급히 구단 직원이 뛰어가 말리는 바람에 가까스로 진정은 됐지만….

그런 그가 4년만에 다시 돌아온 올 시즌에선 확 바뀌었다. TG 전창진 감독은 “훈련, 경기는 물론이고 평소 생활에서도 신경 쓸 게 없다”고 만족해한다.

그를 변하게 한 건 무엇일까. 지난 3년간 이 나라 저 나라 다녀 봤지만 한국 코트만큼 환영받고 돈도 모을 수 있는 곳이 없어서가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용병선수들이 변해야 할 때다.

한선교/방송인 hansun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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