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시를 쓰는 분양대행업자 이성진 사장

  • 입력 2003년 1월 14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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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사장    박영대기자
이성진 사장 박영대기자
‘한세상/굽이마다/목마름에/지치는 우리들

대대로/소망의 심연에서 허덕이는 육신/약속마저 서러운/눈물의 등짐이다.’(이성진의 ‘무소유’ 중)

부동산과 시(詩)는 딱히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더구나 아파트 분양 대행업자와 시인이라는 조합은 물과 기름 격이다.

아파트 한 채 팔려면 갖은 미사여구를 동원해 사람 마음을 홀딱 빼앗아와야 한다. 반면 시는 진솔한 자기 성찰과 고도의 사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이 조합이 잘 어울리는 이가 있다. 아파트 분양 대행업체 ‘알파오’의 이성진 사장(42·사진). 그는 작년 말 문예지를 통해 시인으로 정식 등단했다.

“아직은 가슴에 묻어둬야 할 글인데 엉겁결에 등단을 하게 됐네요. 살면서 드는 느낌들을 정리했을 뿐입니다.”

거칠다면 거친 부동산업계에서 시를 쓴다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 사장 표현대로 ‘시는 사치’다. 하루종일 고객들과 부대끼고, 조금이라도 시간이 나면 수주하러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워낙 정신 없이 살다보니 역설적이게도 시라도 쓰지 않으면 제 육체와 정신이 무너져 버릴 것 같아서 펜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생활에서 느낀 것을 담담히 써 보는 수준이지요.”

스스로를 다잡기 위한 방편으로 시를 선택한 것이다. 문단에 등단한 것도 펜클럽 회원인 아버지가 권유한 때문이다.

“분양 대행을 하다보니 ‘아파트’라는 제목의 시도 썼지요. 그런데 이 시를 주변에 보여 주면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더군요. 인간 본성을 왜곡시키는 구조물의 표상으로 아파트라는 소재를 골랐거든요.”

아직까지는 시를 본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대신 자신을 수양할 수 있을 만큼만 쓰겠단다.

고기정기자 k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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