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옥임/北核 ‘등거리중재’ 현실성없다

  • 입력 2003년 1월 12일 18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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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또다시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미사일 발사시험의 재개 가능성도 시사했다. 위기국면을 극대화시켜 미국과의 협상으로써 담판을 짓겠다는 의도다. 미국이 대 이라크 전에 돌입하기 전 문제를 매듭짓겠다는 초조감도 배어 있는 듯하다. 시간이 결코 북한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北 전략은 양자구도▼

북한은 획기적 경제개혁 조치와 남북화해협력, 그리고 북-일관계 정상화의 수순을 밟아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나아가고자 했었다. 체제보장과 경제회생의 두 마리 토끼를 노린 것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농축우라늄 핵 프로그램이라는 돌출 변수에 발목이 잡혔다. 당혹감 속에서 일괄타결과 불가침조약을 확약받고 사태를 진화하려 했지만, 미국의 선 핵폐기 요구는 완강했다. 북한이 우려했던 중유지원의 중단도 결행되었다. 이로 인한 내부동요를 차단하기 위해, 북한 지도부가 문제의 근원을 미국의 압살정책으로 돌리는 초강수는 불가피했을 것이다. 나아가 차제에 핵무장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적선(赤線)을 이미 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하다. 위기의식이 높아질수록 오히려 북의 꼼수에 말려들 뿐이라는 경각심도 표출된다. 북-미간 신경전에서 미국이 밀리고 있다는 성급한 분석도 나오지만, 미국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대미 협상에만 집착하는 북한의 약을 올리듯, 이 문제를 국제공조 및 다자구도로 풀겠다고 나온다.

그렇다고 미국도 마냥 느긋한 상태는 아니다. 협상 외의 대안이 궁색함도 알고 있다. 부시 행정부 외곽에서는, 만의 하나 북한이 핵무장을 선언할 경우 선제공격마저도 여의치 못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또 공화당 내 온건파 중에는 북의 핵 폐기를 위해 보상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인사도 있다.

그러나 합의 자체를 위반한 북한과 마주 앉아 또 다른 일괄합의를 이루는 일에 미 행정부의 거부감은 크다. 악의 축에 대한 선제공격을 정당화하면서 적극적인 대 확산 정책을 천명하고 나선 마당에, 새삼 북과 협상해 주고받기를 시도한다는 자체가 명분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행태로 볼 때, 새 합의를 재차 기만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한편 미국의 대이라크 정책 현안은 북-미 관계의 숨고르기 요소로 작동하고 있다. 단, 북한이 서둘러 탄도미사일 시험을 강행하거나 폐연료봉의 재처리 수순으로 들어갈 때, 미국이 본격적인 대북 압박을 시작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제재를 선전포고로 간주하는 북한의 태도로 볼 때, 이 시점에서 한반도의 긴장이 증폭되어 위기로 치달을 개연성도 매우 크다.

북한 핵이 민족생존의 문제임을, 또한 한국 주도의 평화적 해결 노력이 바람직함을 부정할 사람은 이 땅에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이 문제는 우리의 통제영역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 북-미 구도로만 풀겠다는 북한의 집요함 때문이다. 이미 우리의 ‘주도적 외교 노력’은 북의 NPT 탈퇴 선언이라는 돌출행위로 뒤통수를 맞은 형국이다. 더욱이 긴밀한 한미 공조가 삐걱거릴 때, 우리의 대미 입지와 대북 입지는 동시에 줄어든다. 현재 북한은 한국 내의 반미정서에 편승해 민족공조와 외세배격을 주장하며 한미관계의 균열을 기도하지만, 1993년과 94년의 핵위기 당시에는 통미봉남(通美封南) 전술을 펴며, ‘불바다’ 발언으로 우리를 경악시킨 전례가 있다. 미국과의 직거래를 위해 자의적으로 필요에 따라 한국을 배제하거나 활용해 왔다. 북한 스스로 핵 문제는 민족공조 사안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대안은 한미 공조▼

이제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핵 문제는 우리를 겨냥한 심각한 안보 도전이다. 미국과 북한과의 등거리(等距離)에서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적 관측보다는, 한미공조의 틀 속에서 북을 국제사회로 유도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인 대안임을 인정해야 한다.

정옥임 전 美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연구위원·국제정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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