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목없는 사면 '反부패' 공염불…12월31일이 기념일도 아닌데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8시 38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임기 막바지에 또 다시 고위 공직자와 경제인 등에 대한 특별사면 및 복권을 단행하기로 해 ‘정권말 봐주기 사면’이라는 비난과 함께 법질서를 어지럽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 대통령은 임기 중 지금까지 6번의 특별사면 및 복권을 단행했다. 김대중 정부 집권 5년간 사면받은 사람은 모두 1040여만명으로 국민 5명당 1명꼴.

특히 31일로 예정된 7번째 특별사면 및 복권은 이전과는 달리 어떤 기념이나 경축 등의 명목도 없고 국민의 법 감정상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여러 명이나 포함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태수(鄭泰守) 전 한보그룹 회장과 김선홍(金善弘) 전 기아그룹 회장의 경우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불러온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지만 이번 사면으로 잔형집행을 면제받았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IMF 체제가 끝났다고 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국민 전체가 얼마나 큰 고통을 겪었느냐”며 “그런 점들을 감안해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판결을 한 것인데 이를 일시에 무효로 만들어버리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사면 및 복권은 국민화합과 사회정의 실현이 그 취지이며 일반 국민 위주로 대상이 선정돼야 하는데 온갖 비리를 저지른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 등이 정권의 편의에 따라 사면 및 복권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추호석(秋浩錫) 전 대우중공업 대표 등 대우그룹 계열사 대표 및 임원 9명의 경우 회계를 조작하고 거액의 불법 대출을 받는 등 비리를 저질러 국가 경제에 큰 타격을 입혀 검찰에 기소된 지 2년도 채 안 돼 형선고실효 특별사면 및 복권이 됐다.

정부는 “경제인들에게 다시 국가 발전과 경제 번영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줄 필요가 있어서 사면 및 복권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사무총장 김선수(金善洙) 변호사는 “대통령을 새로 뽑아 부정부패 척결 및 경제 민주화에 대한 의지를 다져야 할 시점에 각종 비리에 연루됐던 경제인에 대한 사면은 반부패 의지를 반감시킬 수 있기 때문에 잘못”이라고 말했다.

또 청탁과 함께 거액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기소됐던 김영재(金暎宰) 전 금감원 부원장보와 최일홍(崔一鴻) 전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은 각각 구속된 지 6∼8개월 만에 사면 및 복권됐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직무와 관련해 돈을 받은 공직자에 대해 이렇게 빨리 ‘면죄부’를 주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이 두 사람을 일부러 봐주기 위해 끼워 넣었다는 소문도 많다”고 말했다.

경실련 고계현(高桂鉉) 정책실장은 “정부는 국민 통합을 목적으로 사면 및 복권을 했다고 강변하는데 이는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대통령의 임기말 사면권 남발은 이 정권의 반부패 의지가 얼마나 나약한 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별사면 및 감형 복권 대상자 명단
대상자 유형이름 및 직책
경제인정태수(전 한보그룹 회장) 조양호(대한항공 회장) 김선홍(전 기아그룹 회장) 조수호(전 한진해운 사장) 조욱래(전 효성기계그룹 회장) 추호석(전 대우중공업 대표이사) 신영균(전 대우조선 대표이사) 양재열(전 대우전자 대표이사) 유기범(전 대우통신 대표이사) 유현근(전 대우건설 이사) 전주범(전 대우전자 대표이사) 박영하(전 대우 국제금융팀 과장) 박창병(전 대우전자 이사) 서형석(전 대우 기조실장) 등 14명
고위공직자강정훈(전 조달청장) 김영재(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배재욱(전 대통령사정비서관) 전병민(전 대통령정책수석비서관 내정자) 최일홍(전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등 5명
사형수김동운 김인제 김장근 김진태 등 4명
공안선거 사범강위원(전 한총련 의장) 석치순(전 서울지하철노조위원장) 등 공안 40명, 선거 8명
외국인 근로자너마도프웃길 등 51명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길진균기자 leon@donga.com

▼특별사면▼

특별사면은 ‘어떤 범죄’에 대해 취하는 일반사면과는 달리 ‘특정한 사람’에 대해 행하는 것으로 ‘잔형집행면제’와 ‘형선고실효’로 나뉜다. 잔형집행면제는 실형이 확정돼 복역 중에 있는 사람에 대해 남은 형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건강상의 이유 등으로 형집행 정지 처분을 받고 석방된 사람에게도 이런 조치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 별도의 복권 조치를 하지 않으면 피선거권이나 공무담임권 등의 공민권이 일정기간 제한된다.

형선고실효는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사람에 대해 그 선고의 효력을 상실하게 해주는 것.

또 특별감형은 특정인의 형량을 낮춰주는 것이며, 특별복권은 형의 선고로 인해 상실되거나 정지된 특정인의 공민권을 회복시켜 주는 조치다.

특별사면은 법무부 장관의 건의로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대통령이 시행한다.

이상록기자 myzod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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