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경준/서울시는 ´미운 털´?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8시 33분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집권하면 강북 뉴타운은 땅을 파보기도 전에 사라진다.”(서울시의 한 고위 간부)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옮기면 6·25 전쟁 때처럼 한강 이남으로 피란하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다.”(서울시 비상대책회의 후 배포한 보도자료)

대통령 선거운동이 한창일 때 이처럼 ‘원색적으로’ 민주당과 노 후보에 반대 입장을 피력하던 서울시가 ‘노무현 시대’를 맞게 되자 크게 동요하고 있다.

20일 시장단 회의. 매주 금요일이면 이명박(李明博) 시장과 3명의 부시장, 핵심 간부들이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정례회의지만 이날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상당한 시간을 할애해 앞으로의 대책을 논의한 것.

새 정부가 들어서면 으레 되풀이됐던 ‘사정(司正)’에 대한 걱정이 먼저 제기됐다.

한 참석자는 “아무래도 서울시가 타깃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하위직 비리까지 파헤칠 경우 ‘걸면 걸리게’ 돼 있다”는 우려들이 나왔다고 전했다.

중앙정부와의 관계 개선 문제도 논의됐지만 노 당선자측과 가까운 사람이 없어 ‘대책회의’는 별 소득 없이 끝났다.

참석자는 “결국 흐트러질 수 있는 조직의 기강을 다잡기 위해서는 이 시장 친정(親政)체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서울시는 이날 정책보좌관 제도를 신설하는 등 내년 초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친정체제를 강화해 일사불란한 조직을 만드는 게 상책(上策)일까.

서울시는 1000만 서울시민의 살림을 책임지는 ‘소 정부’나 다름없다. 소신을 갖고 당당하게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우선이다. 새로 출범할 중앙정부에 밉보였을지 모른다고 전전긍긍하다 내부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것은 하책(下策) 중 하책이 아닐까.

시의 한 하위직 직원은 “‘미운 털’이 박혔다는 이유만으로 중앙정부가 제동을 건다면 시민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며 “지나치게 정치에 민감한 것도 병이라면 병”이라고 꼬집었다.

정경준기자 사회2부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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